[공원/정원문화]숲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생태계 교란식물 이야기

2025-09-22


9월, 숲과 정원이 여름빛을 지우고 가을 준비에 들어가는 시기. 산책길을 걷다 보면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숲속 풍경에도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겉보기에 평범하고 친근해 보이지만 사실은 숲과 정원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숨은 경쟁자, 바로 생태계 교란종이죠.

이번 글에서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과 함께, 숲속 숨은 경쟁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길에서 마주친 의외의 정체

지난 7월, 전국 도시숲 단체 연합 워크숍에서 현장 답사 중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숲길을 걷던 중, 문득 한 송이의 하얀 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언뜻 보기에 동네 산책길이나 주말농장에서 흔히 보던 가지꽃과 참 많이 닮아 보이더군요. 저도 모르게 “어? 가지꽃이다!”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현장에 계시던 H 코디네이터님이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 (왼쪽)도깨비가지 / (오른쪽) 가지꽃

     📸 사진출처: 좌측 / 도깨비가지; 전북 고창군 상하목장, 우측/ 가지꽃; 경기도 남양주시 인근 촬영


“닮았죠? 근데 그거 가지꽃 아니고, 생태계교란종인 도깨비가지에요.(웃음)”

H 코디네이터님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교외에 사는 제게는 동네 산책길이나 밭둑에서 익숙하게 보던 가지꽃이 떠올라 생긴 해프닝이었죠.
북아메리카 원산의 도깨비가지(Solanum carolinense L.)는 가지목 가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입니다. 줄기는 곧게 서고, 잎과 줄기 곳곳에는
날카로운 가시와 별 모양의 털이 빼곡히 나 있습니다. 강한 번식력과 가뭄에도 잘 견디는 생명력 덕분에 한 번 자리 잡으면
주변 식물의 생육 공간을 빼앗고 숲의 구조까지 바꾸어 놓습니다.

도깨비가지는 모든 기관에 독성 알칼로이드 성분을 함유해 섭취 시 발열·구토·호흡곤란 등 심각한 증상을 유발할 수 있는 유독 식물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뿌리 일부만 남아도 다시 자랄 만큼 생명력이 질겨 ‘숲의 무법자’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도깨비가지는 1970~80년대 목장 조성용 목초 씨앗에 섞여 국내로 유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목장 개발이 활발했던 제주도를 시작으로 중부·남부 지방, 도로변과 목장 주변 등 다양한 환경에서 번식하며
토종 식물의 서식지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생태계 교란종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겉모습만 보면 도깨비가지의 꽃은 토종 가지꽃이나 감자꽃과 매우 흡사합니다. 모두 가지과(Solanaceae)에 속하고, 보랏빛 또는 흰빛이 감도는
오각형 꽃잎 구조를 공유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도깨비가지가 다른 가지과 식물을 흉내 내며 스스로를 위장한다’는 이야기가 생겨났지만,
아직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런 상상만으로도 숲을 탐험하는 즐거움이 커지는 것 같아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식물들 속에 낯선 외래종과 숲의 질서를 뒤흔드는 생명들이 숨어 있다는 사실, 알고 보면 꽤 흥미롭지 않나요?


| 숲의 위장술사, 다양한 교란종

🌱생태계 교란식물이란?

생태계 교란 식물은 외래종 중에서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주거나 그 우려가 있어 법적으로 지정된 식물을 말합니다. 토종 식물의 서식지를 빼앗고, 토양의 영양분을 고갈시키며, 곤충이나 새들의 먹이망을 무너뜨리는 등 생태계 균형을 크게 해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환경부에서 지정·관리하고 있으며, 2025년 현재 약 18종의 생태계 교란 식물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중 상당수는 도로변, 하천변, 도시 공원 등지에서 손쉽게 볼 수 있습니다.

*내용 출처: 한국 외래생물 정보 시스템(https://kias.nie.re.kr/home/cms/eco01001l.do)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생태계 교란식물들>

가시박(Sicyos angulatus L.)

- 덩굴식물로 성장 속도가 빨라 다른 식물을 타고 오르며 뒤덮어 광합성을 방해하고, 결국 주변 식물들을 질식시켜 농경지 작물의 수확량을 감소시킵니다.

단풍잎돼지풀(Ambrosia trifida L.) 

- 돼지풀과 유사하지만 개화 시기가 더 길어 토종 식물의 서식 공간을 더 넓게 

애기수영(Rumex acetosella L.)

- 타원형 열매를 맺으며 번식력이 강하고, 수산(Oxalic acid)을 함유해 가축이 섭취할 경우 소화 장애를 일으킵니다.

환삼덩굴(Humulus japonicus Siebold & Zucc.)

- 생태계 교란종 중 유일하게 외래종이 아닌 식물로, 장마철 이후 하천이나 공원에서 빠르게 번식해 다른 식물을 뒤덮습니다.

도깨비가지(Solanum carolinense L.)

-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 동물의 활동을 위협하며, 목초지·도로변·논밭 등 다양한 환경에서 잘 퍼져 자랍니다.

양미역취(Solidago altissima L.)

- 뿌리에서 분비되는 ‘타감물질’이 주변 식물의 생장을 억제하고, 한 송이 꽃에서 2만 개 이상의 씨앗이 생성될 만큼 번식력이 매우 강합니다. (비밀정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서양등골나물(Ageratina altissima R. (L.) M. king & H. Rob)

- 잎과 줄기에 가축에 해로운 화학물질을 함유해 피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털물참새피(Paspalum distichum var. indutum Shinners)

- 농경지와 습지에서 퍼지며 수면을 덮어 물속의 산소와 빛 유입을 차단해 농작물 생장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미국쑥부쟁이(Aster pilosus Willd.)

- 촘촘하게 자라 다른 식물의 생육을 방해하고, 다량의 씨앗으로 퍼져 생태계 균형을 무너뜨립니다.


📸 사진출처 - 위 표에 사용된 모든 사진은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https://species.nibr.go.kr)에서 2016년에 공개된 공공누리 제1유형 저작물이며, 상업적 이용과 변경이 가능합니다. 사진 원저작자 표기는 사이트 내 사진 설명을 따릅니다.


이 생태계 교란 식물의 공통점은 빠른 성장, 강한 번식력, 자원 독점입니다. 햇빛과 토양, 수분을 차지하고 토종 식물들의 공간을 빼앗아
결국 곤충, 새, 포유류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죠. 

이처럼 생태계 교란식물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고, 도시숲과 생태계의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 미국자리공

📸 사진출처 - 본 사진은 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사이트에서 2020년에 공개된 “미국자리공(Phytolacca americana L.)” 이미지(원작자: 국립생물자원관)를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된 자료를 이용하였으며, 해당 이미지는 국립생물자원관 →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사이트 (https://species.nibr.go.kr) 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 이밖에도 생태계 교란식물과 다르게, 국내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위해 우려가 있어
환경부가 특별히 관리하는 외래식물인 ‘생태계 위해 우려종’도 있습니다
.
위해 우려식물은 예비적 관리 단계로, 위해 발생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별도 관리를 시행합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자리공이 있는데, 낮은 키에 노란 꽃을 피우고 습한 환경을 좋아하며 빠르게 번식합니다.
궁궐숲 가꾸기 초기, 율곡로 권역에는 자리공이 잔뜩 자라 있어 뿌리 뽑느라 꽤 애를 먹기도 했죠.
자리공은 토종 식물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독성을 가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생태계 위해 우려식물>

미국자리공 (Phytolacca americana)아프리카물봉선 (Impatiens glandulifera)향등골나물 (Ageratina adenophora)갯기름나물 (Foeniculum vulgare)털조장나무 (Broussonetia papyrifera)
백합나무 (Liriodendron tulipifera)서양유채 (Brassica napus)재스민나무 (Ligustrum sinense)중국단풍 (Acer buergerianum)자포니카굴피나무 (Zelkova serrata var. japonica)

출처 : 환경부 야생동물종합관리시스템 https://wims.me.go.kr/wims/minwon/cms/cmsCont.do?cntnts_sn=11

이처럼 교란종과 우려 식물은 빠른 성장과 강한 번식력으로 토종 식물의 공간을 잠식하고, 곤충·새·포유류 등 생태계 전체에 연쇄적 영향을 미칩니다.


구분
지정 시점
지정 기준
관리 방식
생태계 교란종실제 피해 단계이미 교란·피해 확인적극 제거·퇴치
생태계 위해 우려종피해 '우려'단계유입시 위해 가능성사전 허가 및 관리



| 작은 손길이 만드는 큰 변화

도시숲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시민이 할 수 있는 행동도 많습니다.

△ 본 이미지는 ChatGPT를 통해 생성된 AI이미지입니다.

  • 산책 중 생태계 교란식물을 발견하면 사진과 함께 ‘한국외래생물정보시스템(kias.nie.re.kr)’의 외래생물 신고 센터를 통해 신고하기 ▶ 환경부와 지자체에서 생태계 교란 생물의 퇴치를 진행합니다.

  • 공원·숲 봉사활동 참여해 생태계 교란식물 제거 활동 동참하기

  • 토종식물을 심는 가드닝·정원 활동 관심 갖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교란종 제거뿐만 아니라 주변 토종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잡초를 정리하는 일도 필수라는 것입니다. 잡초가 자리를 차지하면 토양과 햇빛, 수분을 독점해 토종 식물의 생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함께 손을 보태어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결국 도시숲과 정원의 건강을 지키는 큰 힘이 됩니다.



| 시민 참여로 지키는 건강한 도시숲

서울그린트러스트에서는 시민 봉사활동을 통해 생태계 교란종과 정원 내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잡초들을 제거하고, 공원과 정원을 유지 관리하는 활동을 이어가면서 도시숲 보전을 이어가고 있어요.

  • 비밀정원 1호와 플랜비가든에서 ‘공원의친구들’ 활동 (@서울어린이대공원) 

  • 궁궐숲 가꾸기 (@창경궁 율곡로 권역)

  • 한강숲 가꾸기 (@이촌한강공원 / @뚝섬한강공원)

작은 손길 하나가 숲의 건강에 큰 변화를 만든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우리가 산책 중 발견하는 교란식물, 공원과 정원의 잡초,
그리고 토종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관찰하며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도시의 생태계는 점점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가 진행하는 궁궐숲, 한강숲, 그리고 비밀정원 등의 활동은 단순한 봉사나 정원 관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참여자들은 숲 속에서 식물을 관찰하고, 교란종을 식별하며, 토종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험을 통해 도시숲의 건강을 지키는
작은 지킴이가 되어가죠.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관찰과 기록, 그리고 작은 손길이 모이면, 우리 주변 도시숲은 한층 풍요롭고 생명력 있는 공간으로 살아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눈길을 주고 손을 보태는 것만으로도, 숲과 정원의 균형을 지키는 큰 힘이 됩니다.

가을빛이 짙어지는 요즘, 숲과 정원을 걸으며 숨은 경쟁자들을 발견하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는 시간을 함께 해보는 건 어떨까요?


📌 함께 읽어보면 좋을 만한 정보들     * 본문은 해당 자료를 참고해 작성하였습니다.

[농민신문] 외래잡초 ‘도깨비가지’ 비상, 2002-07-24

[한국 외래생물 정보시스템] 생태계교란생물

[제주환경일보] 화순곶자왈을 온통 차지한 유해식물 ‘도깨비가지’.. 왜 그냥 놓아두나,2023-03-14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약칭: 생물다양성법)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말썽꾸러기 외래식물 국내 입국 까다로워진다,201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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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서울그린트러스트 2025년 9월 뉴스레터 ‘찰나의 순간, 찰나의 계절 中 탐험하는 초록, 발견하는 숲과 정원’에 수록되는 내용입니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서울그린트러스트의 활동소식과 함께 국내·외 초록 이야기에 대한 뉴스레터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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