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버킷리스트와 같은 백두산, 제일 먼저 애국가의 첫 소절이 떠오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동해는 수 없이 봤는데 백두산은 아직 못 봤다. 분단된 국가라는 애절함의 상징인 장소이면서도 민족의 영산으로도 표현되는 백두산. 게다가 백두산이 있는 중국 길림성 일대는 크게 만주, 동간도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분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곳이다. 우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지역이기에 의미도 있지만 내가 이 탐사 여정에 참여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해발 2,000m 이상의 고산습지와 원시림, 그리고 그곳의 자연과 식물들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산을 야생화 탐사로 간다면 더 의미 있을 것 같아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번 탐사를 통해 나는 식물들의 고향에서 그 식물들을 직접 만나는 설렘을 알게 되었다. 식물의 본래 자생지의 서식처에 대한 시야를 더 확장할 수 있었고, 땅을 읽는다는 의미가 이런 것이지 않을까 어렴풋이 유추해 보았다. 더불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식생이 보여주는 화려한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권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식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이 백두산 야생화 탐사는 25년째 백두산에서 탐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이도근 대장('백두산 식물길라잡이' 저자)님이 인솔한 일주일간의 여정이었다. 백두산 일대의 고산지대 식생을 관찰하는 모임에 합류한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설렘이었다. 특히 김진석 박사('한국의 나무' 저자)님과 이대길 운영위원(이대길스튜디오 소장)님과의 동행은 최고의 행운이었다. 식물의 동정뿐만 아니라 땅을 읽어가는 생각의 깊이를 엿볼 수 있었던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나 역시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백두산 일대는 미지의 자연이었다. 사진집을 찾아보면 자생식물들이 화려하게 피어있는데, 실제로 백두산 일대의 초원 대군락에 화려함이 실존하는 건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정원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각 각의 식물이 어느 곳에서 왔는지 모르고, 심었던 경험이 있는데 용담과 개미자리와 같은 식물도 실제 자생지에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확인 할 수 있었다. 탐사를 통해 이 친구들을 포함해 예상치 못한 아주 많은 식물을 만날 수 있었다.
탐사 장소는 고도 순으로 백두산 천지 서파, 북파(1,900~2400m), 장백폭포(1,700m), 소천지(1,700m), 왕지(1,400m), 선봉령 숲(1,100m), 황송포 산성습원(700m), 액목습지(500m), 동성용진(350m) 이었다.
특히 가장 인상깊었던 백두산 왕지의 다습한 개활지 서식처에서 볼 수 있는 식물들과 떠오른 생각들에 대한 기록을 나누려고 한다.
백두산 천지(서파) 일출 타임랩스
왕지 (King Lake)
2024.07.31.
길림성 연변조석족자치주 안도현
고도 1,400m* 기상 맑음🌞
큰 호수라는 뜻의 왕지를 가기 위해서는 둘레가 2km나 되는 특이한 고산습지를 거쳐서 들어가야 한다. 사실 왕지에 대해 사전 정보가 없기도 했고, 백두산 서파 코스의 아름다움과 새벽 산행의 여운으로 패키지여행의 수동적인 태세로 실려갔는데, 다 보고 나오는 길에 앞으로 해나가는 일에 있어서 이곳을 본 전과 후가 분명 다를 것임을 깨달은 곳이었다.
고산지대 환경이해하기.
고산툰드라(수목한계선 이상에 발달한 고산 평원)의 환경은 기온, 광선, 바람, 수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저지대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초속 15~35m의 강풍, 거기에다 혹독한 추위, 수시로 하늘을 뒤덮는 검은 구름과 안개, 식물을 무참하게 짓이겨버리는 밤톨 크기의 우박은 끊임없이 식물의 생존을 위협한다. 토양은 표토가 얕고, 숙성도가 낮으며 차갑고 유기물 함량이 낮다. 또한 토양의 수소 이온 농도(pH)가 낮은 산성 토양이 많고 토양 질소 성분과 인산 함량이 낮은 것이 고산툰드라 토양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들어가는 초입부, 종비나무(Picea koraiensis)와 분비나무(Abies nephrolepis)가 수문장처럼 우두커니 지키는 것처럼 서 있는 초원을 지나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성용진의 초원처럼 드문드문 눈길을 끄는 풍경과 식물이 있는 정도였다.
어느 순간 침엽수들이 전부 뒤로 물러나고, 광활한 초원이 펼쳐지는데 『백두산 식물 길라잡이』 도감 속 왕지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지리강활을 포함하여 4종류의 산형과 식물들이 초원 전역에 펴있는 와중에 사이사이로 도깨비엉겅퀴, 냉초, 자주꽃방망이가 어우러진다. 사람이 의도하고 조성할 정도로 안정적인 짜임새가 느껴졌다. 꽃들이 줄기를 위로 뻗어 올라오는 형태여서 바람에 둥둥 흔들리는데 그 사잇길로 걸으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왕지에서 경험한 것은 정말로 환상적인 자연이었다. 환상적이라는 단어를 이럴 때 쓰면 되겠다 싶었다. 눈으로는 꽃으로 수놓은 초원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귀로는 벌들의 날개 진동 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나비와 꽃등에가 우리를 탐색하듯 쫓아다녔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곳마다 귀여운 벌들이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꿀을 따느라 분주했다. "이런 곳이 존재하다니!" 식물원 유리온실 안이 아니라 모두가 자유로운 자연이었다. 이곳에 있는 곤충들은 평화로웠고 우리는 잠시 방문한 손님이었다. 그들에게도 낙원이고, 우리에게도 낙원이다.
꽃이 지고 나서 미색으로 물든 눈개승마의 꽃차례가 흰색의 산형과 꽃들과 어우러져 더욱 기품이 느껴진다.
사진 중앙에 음양고비가 우점한 영역이 있다. 그곳은 지대가 푹 꺼져서 좀 더 습기가 있는 곳일 것이다. 이곳에서도 볼 수 있는 명확한 질서.
어리곤달비, 음양고비, 물양지꽃 등으로 흙이 질은 편일 거로 생각했는데 역시나 공이 만들어진다. 대신 배수가 아주 잘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쑥 종류(비로봉쑥)가 혹여나 잡초로 치부된다고 하더라도 여기서는 감초 역할이 되어준다.
<키 작은 식생 종류 - 왕지>
은방울꽃 + 술패랭이 + 꽃쥐손이 + 숙은노루오줌 + 비로봉쑥 + 손바닥난초
초원의 끝엔 숲이 이어졌다. 초입부에 속새가 우점하는 바탕에 툭툭 자라고 있던 식물 간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왕지는 큰 호수였고, 그 주변엔 식생이 흥미롭지는 않았다.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초원을 통하여 나가는 구조이다.
주로 유럽, 미국에서 조성되거나 자생하는 알록달록한 초원의 풍경이 그 나라답다고 생각하며, 아시아권의 초원과는 이미지가 다르다고 은연중으로 구별을 해왔던 것 같다. 아시아의 초원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도 한 곳의 사례조차 없는 채로 말이다. 겨우 끌어내 생각하노라면 제주도의 들판에서 봤던 벼과식물만 우점하여 가을에 억새나 수크령의 꽃이삭 등만 잔뜩 차 있는 그런 풍경들이다. 그곳에서도 식물 사이사이에 계절마다 초본식물이 꽃을 피워내지만, 초원을 장악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는 남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 아시아권에서도 계절마다 다양한 꽃이 피어나는 왕지라는 초원이 있음을 알았다.
왕지초원은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웠지만 청각마저 아름다웠던 곳이었다. 눈으로는 놀라운 Flowery Meadow를 바라보고 귀로는 새소리, 벌 소리가 진동 했다. 아마 이곳에서 벌과 나비가 함께 걷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걸음걸음마다 같이 멈춰서서 정지비행 하던 벌과 내려 앉던 나비. 그 친구들은 정말이지 요정과 같았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이나 수목원과 같은 안전한 환경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이런 놀라운 야생의 경험을 더 다양한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크게 위협적이진 않으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나는 생태적인 세상. 왕지초원이 바로 그런 세상이었다. 앞으로 이곳에 얼마나 더 많은 관광객이 몰려올지, 보존을 위해 차단이 될지, 새로운 곳으로 개발이 될지. 중국의 손에 달려있지만, 자연을 즐기면서 함께 살아가는 문화로의 성장을 위해서 앞으로 나도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 봐야겠노라고 생각했다. 원래 살던 모든 동식물을 포함한 토착종을 인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정원을 만드는 것도 앞으로 내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될 것 같다.
왕지에서 발견한 식물
고비과ㅣ 음양고비(Osmunda claytoniana)꿩고비와 유사하나 포자엽이 따로 올라오지 않고 영양엽의 1/3 지점에 포자가 달리는 점이 특징이다. 양지바르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국화과 ㅣ비로봉쑥(Artemisia brachyphylla) (사진 중앙 은색 도는 식물) 우리나라 중부 이북에 분포한다고 쓰여 있지만 만나기 극히 어려운 식물, 중국 북동부에 분포한다. 은색의 잎부터 형태감이 너무 아름다웠던 쑥.
국화과 ㅣ참취 (Aster scaber) (사진 중앙 흰 꽃) 우리에게 나물로 익숙한 식물. 꽃이 보기 좋아 정원식물로 가치가 있다는 말만 들었는데 이렇게 아름답게 어우러진 풍경은 처음 보았다.
국화과 ㅣ도깨비엉겅퀴 (Cirsium schantarense) (사진 중앙 분홍색 꽃) 해발 1,100m 이상과 고산 화원의 햇빛이 잘 드는 길가 및 숲 가장자리에 자란다. 이름과는 달리 정말 귀여운 모양의 꽃으로 시선을 주목시키는데, 여러 꽃차례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다채로움을 전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국화과 ㅣ민박쥐나물 (Parasenecio hastatus) (사진 중앙 미색 꽃 핀 식물) 깊은 산의 초원이나 계곡의 물기 많은 곳에서 자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제주도 한라산, 경상남도 지리산, 경상북도, 강원도, 경기도의 깊은 산지, 평안북도 묘향산, 함경남도 백두산 등 고산지대 숲속에서 군집을 이루어 자란다. 박쥐나물 종류가 보통 숲 안 그늘에서 자라는데 이 종은 초원까지 나오는 걸로 보아 서늘한 온도라면 햇빛을 봐도 살만해서 나오는 것 같다. 짙은 자주색 줄기에 분이 칠해져 있는데 줄기 색과 꽃, 잎 균형감이 아주 인상적인 식물이다.
마디풀과 ㅣ 수영(Rumex acetosa)(사진 중앙 선처럼 솟은 미색 꽃) 비단 꽃만 있었다면 단조로워 풍부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꽃이 지고 난 수영을 포함해서 눈개승마의 꽃차례까지 아스라이 물들어가는 색까지 더해져서 감동의 선을 건드렸다.
미나리아재비과 ㅣ 촛대승마(Actaea simplex) (사진 중앙 꽃대가 올라온 식물) 원종임에도 잎이 다소 자줏빛을 돈다. 노루오줌(Astilbe)처럼 촉촉한 토양 환경에 온도가 서늘하다면 양지에서도 자랄 수 있을 것 같다.
산형과 ㅣ 왜우산풀(Pleurospermum uralense) (사진 중앙 흰 꽃) 고산화원 등지의 물기 많은 곳에서 자란다. 키는 2m까지 자라며, 뿌리와 주릭, 잎에서 강한 냄새가 난다. 누룩치라고도 한다. 잎이 코스모스같이 생기고 꽃이 평평하다.
산형과 ㅣ 개구릿대(Angelica anomala) 서백두 왕지 및 고산화원의 물기 많은 초원에 자란다. 키는 1.5m까지 자라고,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피는 흰색 꽃은 줄기와 가지 끝에 나온 꽃줄기에 여러개의 우산 모양으로 달린다. 줄기는 자주색이고, 털이 많다. 지리강활(Angelica amurensis)과 같은 속으로 동정하기 쉽지 않았다.
산형과 ㅣ 좁은잎어수리(Heracleum moellendorffii var. subbipinnatum)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므로 한국의 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꽃잎이 제비꼬리 모양으로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장미과 ㅣ 물양지꽃(Potentilla cryptotaeniae)(사진 중앙 노란색 꽃) 양지꽃 종류들이 대개 건조하고 햇빛이 강한 곳에서 자라곤 하는데, 습하고 질척한 곳에서 자라는 종이라 물양지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초롱꽃과 ㅣ 자주꽃방망이(Polygonum ochotense)(사진 중앙 보라색 꽃) 해발 2,200m 고산초원까지 자란다. 그간 심고 지켜봐온 모든 자주꽃방망이가 엎어졌는데, 너무나 안정적으로 서 있었다. 이 곳에도 비가 제법 세차게 내렸을텐데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곧게 서 있는 본연의 모습이었다.
현삼과 ㅣ 냉초(Veronicastrum sibiricum) (사진 중앙 보라색 꽃) 해발 1,700m까지의 풀밭과 숲 가장자리에 자란다. 돌려나는 잎이 형태미가 뚜렷하게 읽혀서 기하학적인 느낌을 주는 식물.
작년 9월, 백두산 야생화 탐사를 결심하고 올해 7월, 드디어 백두산에 다녀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버킷리스트와 같은 백두산, 제일 먼저 애국가의 첫 소절이 떠오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동해는 수 없이 봤는데 백두산은 아직 못 봤다. 분단된 국가라는 애절함의 상징인 장소이면서도 민족의 영산으로도 표현되는 백두산. 게다가 백두산이 있는 중국 길림성 일대는 크게 만주, 동간도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분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곳이다. 우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지역이기에 의미도 있지만 내가 이 탐사 여정에 참여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해발 2,000m 이상의 고산습지와 원시림, 그리고 그곳의 자연과 식물들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산을 야생화 탐사로 간다면 더 의미 있을 것 같아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번 탐사를 통해 나는 식물들의 고향에서 그 식물들을 직접 만나는 설렘을 알게 되었다. 식물의 본래 자생지의 서식처에 대한 시야를 더 확장할 수 있었고, 땅을 읽는다는 의미가 이런 것이지 않을까 어렴풋이 유추해 보았다. 더불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식생이 보여주는 화려한 아름다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권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식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이 백두산 야생화 탐사는 25년째 백두산에서 탐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이도근 대장('백두산 식물길라잡이' 저자)님이 인솔한 일주일간의 여정이었다. 백두산 일대의 고산지대 식생을 관찰하는 모임에 합류한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설렘이었다. 특히 김진석 박사('한국의 나무' 저자)님과 이대길 운영위원(이대길스튜디오 소장)님과의 동행은 최고의 행운이었다. 식물의 동정뿐만 아니라 땅을 읽어가는 생각의 깊이를 엿볼 수 있었던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나 역시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백두산 일대는 미지의 자연이었다. 사진집을 찾아보면 자생식물들이 화려하게 피어있는데, 실제로 백두산 일대의 초원 대군락에 화려함이 실존하는 건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정원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각 각의 식물이 어느 곳에서 왔는지 모르고, 심었던 경험이 있는데 용담과 개미자리와 같은 식물도 실제 자생지에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확인 할 수 있었다. 탐사를 통해 이 친구들을 포함해 예상치 못한 아주 많은 식물을 만날 수 있었다.
탐사 장소는 고도 순으로 백두산 천지 서파, 북파(1,900~2400m), 장백폭포(1,700m), 소천지(1,700m), 왕지(1,400m), 선봉령 숲(1,100m), 황송포 산성습원(700m), 액목습지(500m), 동성용진(350m) 이었다.
특히 가장 인상깊었던 백두산 왕지의 다습한 개활지 서식처에서 볼 수 있는 식물들과 떠오른 생각들에 대한 기록을 나누려고 한다.
2024.07.31.
길림성 연변조석족자치주 안도현
고도 1,400m* 기상 맑음🌞
큰 호수라는 뜻의 왕지를 가기 위해서는 둘레가 2km나 되는 특이한 고산습지를 거쳐서 들어가야 한다. 사실 왕지에 대해 사전 정보가 없기도 했고, 백두산 서파 코스의 아름다움과 새벽 산행의 여운으로 패키지여행의 수동적인 태세로 실려갔는데, 다 보고 나오는 길에 앞으로 해나가는 일에 있어서 이곳을 본 전과 후가 분명 다를 것임을 깨달은 곳이었다.
고산지대 환경이해하기.
고산툰드라(수목한계선 이상에 발달한 고산 평원)의 환경은 기온, 광선, 바람, 수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저지대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초속 15~35m의 강풍, 거기에다 혹독한 추위, 수시로 하늘을 뒤덮는 검은 구름과 안개, 식물을 무참하게 짓이겨버리는 밤톨 크기의 우박은 끊임없이 식물의 생존을 위협한다. 토양은 표토가 얕고, 숙성도가 낮으며 차갑고 유기물 함량이 낮다. 또한 토양의 수소 이온 농도(pH)가 낮은 산성 토양이 많고 토양 질소 성분과 인산 함량이 낮은 것이 고산툰드라 토양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들어가는 초입부, 종비나무(Picea koraiensis)와 분비나무(Abies nephrolepis)가 수문장처럼 우두커니 지키는 것처럼 서 있는 초원을 지나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성용진의 초원처럼 드문드문 눈길을 끄는 풍경과 식물이 있는 정도였다.
어느 순간 침엽수들이 전부 뒤로 물러나고, 광활한 초원이 펼쳐지는데 『백두산 식물 길라잡이』 도감 속 왕지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지리강활을 포함하여 4종류의 산형과 식물들이 초원 전역에 펴있는 와중에 사이사이로 도깨비엉겅퀴, 냉초, 자주꽃방망이가 어우러진다. 사람이 의도하고 조성할 정도로 안정적인 짜임새가 느껴졌다. 꽃들이 줄기를 위로 뻗어 올라오는 형태여서 바람에 둥둥 흔들리는데 그 사잇길로 걸으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왕지에서 경험한 것은 정말로 환상적인 자연이었다. 환상적이라는 단어를 이럴 때 쓰면 되겠다 싶었다. 눈으로는 꽃으로 수놓은 초원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귀로는 벌들의 날개 진동 소리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나비와 꽃등에가 우리를 탐색하듯 쫓아다녔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곳곳마다 귀여운 벌들이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꿀을 따느라 분주했다. "이런 곳이 존재하다니!" 식물원 유리온실 안이 아니라 모두가 자유로운 자연이었다. 이곳에 있는 곤충들은 평화로웠고 우리는 잠시 방문한 손님이었다. 그들에게도 낙원이고, 우리에게도 낙원이다.
꽃이 지고 나서 미색으로 물든 눈개승마의 꽃차례가 흰색의 산형과 꽃들과 어우러져 더욱 기품이 느껴진다.
사진 중앙에 음양고비가 우점한 영역이 있다. 그곳은 지대가 푹 꺼져서 좀 더 습기가 있는 곳일 것이다. 이곳에서도 볼 수 있는 명확한 질서.
어리곤달비, 음양고비, 물양지꽃 등으로 흙이 질은 편일 거로 생각했는데 역시나 공이 만들어진다. 대신 배수가 아주 잘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쑥 종류(비로봉쑥)가 혹여나 잡초로 치부된다고 하더라도 여기서는 감초 역할이 되어준다.
<키 작은 식생 종류 - 왕지>
은방울꽃 + 술패랭이 + 꽃쥐손이 + 숙은노루오줌 + 비로봉쑥 + 손바닥난초
초원의 끝엔 숲이 이어졌다. 초입부에 속새가 우점하는 바탕에 툭툭 자라고 있던 식물 간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왕지는 큰 호수였고, 그 주변엔 식생이 흥미롭지는 않았다.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시 초원을 통하여 나가는 구조이다.
주로 유럽, 미국에서 조성되거나 자생하는 알록달록한 초원의 풍경이 그 나라답다고 생각하며, 아시아권의 초원과는 이미지가 다르다고 은연중으로 구별을 해왔던 것 같다. 아시아의 초원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도 한 곳의 사례조차 없는 채로 말이다. 겨우 끌어내 생각하노라면 제주도의 들판에서 봤던 벼과식물만 우점하여 가을에 억새나 수크령의 꽃이삭 등만 잔뜩 차 있는 그런 풍경들이다. 그곳에서도 식물 사이사이에 계절마다 초본식물이 꽃을 피워내지만, 초원을 장악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는 남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 아시아권에서도 계절마다 다양한 꽃이 피어나는 왕지라는 초원이 있음을 알았다.
왕지초원은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웠지만 청각마저 아름다웠던 곳이었다. 눈으로는 놀라운 Flowery Meadow를 바라보고 귀로는 새소리, 벌 소리가 진동 했다. 아마 이곳에서 벌과 나비가 함께 걷던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걸음걸음마다 같이 멈춰서서 정지비행 하던 벌과 내려 앉던 나비. 그 친구들은 정말이지 요정과 같았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이나 수목원과 같은 안전한 환경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이런 놀라운 야생의 경험을 더 다양한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크게 위협적이진 않으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일어나는 생태적인 세상. 왕지초원이 바로 그런 세상이었다. 앞으로 이곳에 얼마나 더 많은 관광객이 몰려올지, 보존을 위해 차단이 될지, 새로운 곳으로 개발이 될지. 중국의 손에 달려있지만, 자연을 즐기면서 함께 살아가는 문화로의 성장을 위해서 앞으로 나도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 봐야겠노라고 생각했다. 원래 살던 모든 동식물을 포함한 토착종을 인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정원을 만드는 것도 앞으로 내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될 것 같다.
왕지에서 발견한 식물
고비과ㅣ 음양고비(Osmunda claytoniana) 꿩고비와 유사하나 포자엽이 따로 올라오지 않고 영양엽의 1/3 지점에 포자가 달리는 점이 특징이다. 양지바르고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국화과 ㅣ비로봉쑥(Artemisia brachyphylla) (사진 중앙 은색 도는 식물) 우리나라 중부 이북에 분포한다고 쓰여 있지만 만나기 극히 어려운 식물, 중국 북동부에 분포한다. 은색의 잎부터 형태감이 너무 아름다웠던 쑥.
국화과 ㅣ참취 (Aster scaber) (사진 중앙 흰 꽃) 우리에게 나물로 익숙한 식물. 꽃이 보기 좋아 정원식물로 가치가 있다는 말만 들었는데 이렇게 아름답게 어우러진 풍경은 처음 보았다.
국화과 ㅣ도깨비엉겅퀴 (Cirsium schantarense) (사진 중앙 분홍색 꽃) 해발 1,100m 이상과 고산 화원의 햇빛이 잘 드는 길가 및 숲 가장자리에 자란다. 이름과는 달리 정말 귀여운 모양의 꽃으로 시선을 주목시키는데, 여러 꽃차례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다채로움을 전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국화과 ㅣ민박쥐나물 (Parasenecio hastatus) (사진 중앙 미색 꽃 핀 식물) 깊은 산의 초원이나 계곡의 물기 많은 곳에서 자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제주도 한라산, 경상남도 지리산, 경상북도, 강원도, 경기도의 깊은 산지, 평안북도 묘향산, 함경남도 백두산 등 고산지대 숲속에서 군집을 이루어 자란다. 박쥐나물 종류가 보통 숲 안 그늘에서 자라는데 이 종은 초원까지 나오는 걸로 보아 서늘한 온도라면 햇빛을 봐도 살만해서 나오는 것 같다. 짙은 자주색 줄기에 분이 칠해져 있는데 줄기 색과 꽃, 잎 균형감이 아주 인상적인 식물이다.
마디풀과 ㅣ 수영(Rumex acetosa) (사진 중앙 선처럼 솟은 미색 꽃) 비단 꽃만 있었다면 단조로워 풍부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꽃이 지고 난 수영을 포함해서 눈개승마의 꽃차례까지 아스라이 물들어가는 색까지 더해져서 감동의 선을 건드렸다.
미나리아재비과 ㅣ 촛대승마(Actaea simplex) (사진 중앙 꽃대가 올라온 식물) 원종임에도 잎이 다소 자줏빛을 돈다. 노루오줌(Astilbe)처럼 촉촉한 토양 환경에 온도가 서늘하다면 양지에서도 자랄 수 있을 것 같다.
산형과 ㅣ 왜우산풀(Pleurospermum uralense) (사진 중앙 흰 꽃) 고산화원 등지의 물기 많은 곳에서 자란다. 키는 2m까지 자라며, 뿌리와 주릭, 잎에서 강한 냄새가 난다. 누룩치라고도 한다. 잎이 코스모스같이 생기고 꽃이 평평하다.
산형과 ㅣ 개구릿대(Angelica anomala) 서백두 왕지 및 고산화원의 물기 많은 초원에 자란다. 키는 1.5m까지 자라고,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피는 흰색 꽃은 줄기와 가지 끝에 나온 꽃줄기에 여러개의 우산 모양으로 달린다. 줄기는 자주색이고, 털이 많다. 지리강활(Angelica amurensis)과 같은 속으로 동정하기 쉽지 않았다.
산형과 ㅣ 좁은잎어수리(Heracleum moellendorffii var. subbipinnatum)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므로 한국의 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꽃잎이 제비꼬리 모양으로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장미과 ㅣ 물양지꽃(Potentilla cryptotaeniae) (사진 중앙 노란색 꽃) 양지꽃 종류들이 대개 건조하고 햇빛이 강한 곳에서 자라곤 하는데, 습하고 질척한 곳에서 자라는 종이라 물양지꽃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초롱꽃과 ㅣ 자주꽃방망이(Polygonum ochotense) (사진 중앙 보라색 꽃) 해발 2,200m 고산초원까지 자란다. 그간 심고 지켜봐온 모든 자주꽃방망이가 엎어졌는데, 너무나 안정적으로 서 있었다. 이 곳에도 비가 제법 세차게 내렸을텐데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곧게 서 있는 본연의 모습이었다.
현삼과 ㅣ 냉초(Veronicastrum sibiricum) (사진 중앙 보라색 꽃) 해발 1,700m까지의 풀밭과 숲 가장자리에 자란다. 돌려나는 잎이 형태미가 뚜렷하게 읽혀서 기하학적인 느낌을 주는 식물.
왕지에서 발견한 식물 목록
과명
국명
학 명
서식처
비고
고비과
음양고비
Osmunda claytoniana
다습한 개활지
국화과
비로봉쑥
Artemisia brachyphylla
다습한 개활지
국화과
참취
Aster scaber
다습한 개활지
국화과
도깨비엉겅퀴
Cirsium schantarense
다습한 개활지
1100m 이상
국화과
민박쥐나물
Parasenecio hastatus
다습한 개활지 / 숲가장자리
700m 이상
국화과
뻐꾹채
Rhaponticum uniflorum
다습한 개활지
마디풀과
수영
Rumex acetosa
다습한 개활지
미나리아재비과
촛대승마
Actaea simplex
다습한 개활지
미나리아재비과
꿩의다리
Thalictrum aquilegiifolium var. sibiricum
습지가장자리
백합과
여로
Veratrum maackii var. japonicum
다습한 개활지
범의귀과
숙은노루오줌
Astilbe koreana
다습한 개활지
산형과
지리강활
Angelica amurensis
다습한 개활지
산형과
개구릿대
Angelica anomala
다습한 개활지
산형과
좁은잎어수리
Heracleum moellendorffii var. subbipinnatum
다습한 개활지 / 숲가장자리
산형과
왜우산풀
Pleurospermum uralense
다습한 개활지
석송과
만년석송
Lycopodium obscurum
숲
인동과
댕댕이나무
Lonicera caerulea
다습한 개활지
장미과
물양지꽃
Potentilla cryptotaeniae
다습한 개활지
쥐손이풀과
꽃쥐손이
Geranium platyanthum
숲가장자리
초롱꽃과
자주꽃방망이
Campanul glomerata ssp. Speciosa
다습한 개활지
현삼과
송이풀
Pedicularis resupinata
다습한 개활지
현삼과
냉초
Veronicastrum siviricum
다습한 개활지
<내용참고>
식물의 살아남기 백두산 툰드라 지역, 대원사, 이성규
백두산 식물 길잡이, 궁리, 이도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