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 물 순환의 위기
긴 장마가 시작되는 계절입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우리는 가장 먼저 우산을 챙기고, 침수 뉴스를 확인하고, 출근길 교통 상황을 걱정합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지는 집중호우가 반복되면서, 비는 어느새 '피해야 하는 것', '가능한 한 빨리 흘려보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하죠.
하지만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요?
비는 정말 가능한 한 빨리 흘려보내야 하는 존재일까요? |
최근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세계 여러 도시에서는 '레인가든(Rain Garden)', 우리말로 빗물정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빗물을 배수하는 대신 잠시 머물게 하고, 천천히 땅으로 스며들게 하며,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기능을 하는 녹색 공간입니다.
사실 자연에서 빗물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숲에서는 나뭇잎을 타고 떨어진 빗물이 흙으로 스며들고, 식물의 뿌리를 적신 뒤 계곡과 하천으로 이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토양은 물을 저장하고, 식물은 수분을 흡수하며, 일부는 지하수로 스며듭니다.
빗물은 생명을 키우고 다시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 google geminai 4.0 로 생산한 이미지
하지만 도시에서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지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인 지면은 빗물이 스며들 틈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비가 내리면 대부분의 물은 배수시설을 통해 빠르게 하천으로 흘러갑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물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침수 위험은 커지고, 빗물은 도로 위의 오염물질과 함께 하천으로 유입되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폭우가 지나간 뒤입니다. 많은 비가 내렸는데도 도시는 다시 물 부족을 걱정합니다.
땅속에 저장되지 못한 물은 순식간에 도시를 떠나고, 우리는 또다시 폭염과 가뭄을 마주하게 됩니다.
기후위기로 인해 폭우와 가뭄이 반복되는 지금, 세계 여러 도시는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비를 어떻게 도시 안에 머물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해답은 의외로 거대한 댐이나 토목시설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공원과 정원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빗물을 품는 정원, 레인가든(Rain Garden)
정원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꽃과 나무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여러 도시가 주목하는 정원은 조금 다른 역할을 합니다. 바로 도시의 물순환을 회복하는 정원입니다.
비가 내리면 빗물을 잠시 모아두고, 천천히 흙으로 스며들게 하며, 식물이 자연스럽게 이용하도록 돕는 공간.
때로는 빗물을 저장하고, 때로는 계절마다 습지를 만들고, 때로는 개울과 연못을 연결해 다양한 생물이 살아갈 환경을 만드는 공간입니다.
이러한 정원들은 레인가든(Rain Garden), 빗물정원, 습지정원, 저류정원, 또는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도 자연의 물순환을 되살리는 것. 이러한 공간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합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빗물을 잠시 머물게 해 침수 위험을 줄이고, 흙으로 스며든 물은 식물의 생장을 돕습니다.
토양과 식생은 빗물을 자연스럽게 걸러 하천으로 흘러가는 수질을 개선하고, 증발산 작용은 여름철 도시의 열을 식히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무엇보다 물은 생명을 불러옵니다. 물이 있는 곳에는 곤충이 찾아오고, 곤충을 따라 새가 머뭅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습지와 식생은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가 되고,
시민들에게는 자연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줍니다.
그래서 레인가든은 단순히 비를 관리하는 시설이 아닙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생물다양성을 회복하며, 사람과 자연을 다시 연결하는 도시의 녹색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입니다.
특히 이러한 레인가든의 역할은 최근 글로벌 ESG 및 생물다양성 공시 기준인 TNFD(자연관련 재무정보 공시)가 강조하는 생태계 서비스의 가치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TNFD 관점에서 도시 환경은 안정적인 수자원 공급과 토양의 정화 능력이라는 생태계 서비스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기존의 콘크리트 도시화는 수계 교란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레인가은은 빗물을 저장하고 정화해 지하수와 하천으로 되돌려줌으로써 수자원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자연이 주는 혜택에 대한 건강한 의존성을 회복하는 실질적인 평가 지표이자 해법이 되어줍니다.
이러한 흐름은 이미 세계 여러 도시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되고 있습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 활동가들도 미국 오스틴과 호주 멜버른에서 도시의 물순환 시스템을 직접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두 도시는 서로 다른 환경과 규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의 공통된 철학을 품고 있었습니다. 비를 버리는 도시가 아니라, 비와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만드는 것. 그 철학은 생각보다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울 곳곳에서 서울그린트러스트가 만들어 온 정원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 세계는 비를 어떻게 품고 있을까?
미국 오스틴 | 공원을 도시의 물순환 인프라로 만들다
"공원은 도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은 이 질문에 오래전부터 답을 찾아온 도시입니다. 오스틴 도심을 가로지르는 Lady Bird 호수 주변에는 공원과 트레일, 하천, 빗물정원(Rain Garden), 녹지가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민들은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며 이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용하지만, 그 아래에는 도시의 물순환을 회복하기 위한 치밀한 설계가 숨어 있습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 활동가들은 현지에서 진행된 〈Downtown Bike Tour of Green Stormwater Infrastructure Around Lady Bird Lake〉 프로그램에 참여해 이러한 공간들을 직접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달리며 만난 것은 단순히 잘 조성된 공원이 아니었습니다. 도시가 빗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갈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에 대한 하나의 철학이었습니다.

📍Barton Springs & Johnson Creek Trailhead
답사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곳은 화려한 공원이 아니었습니다. 오스틴 시민들의 중요한 수원인 바튼 스프링스(Barton Springs)였습니다. 오스틴시는 이곳의 수질과 지하수를 보호하기 위해 'Save Our Springs Ordinance'라는 정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정책은 단순한 개발 규제가 아닙니다. 도시의 물순환을 유지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에 가깝습니다.
이를 위해 오스틴시는 개발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불투수면 최소화 저밀도 개발 유도 공원과 오픈스페이스 확보 자연지형 보전 주요 토지의 공공 매입 및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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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핵심은 하나였습니다. 비가 내렸을 때, 물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을 도시 안에 남겨두는 것.
공원을 만드는 일도, 녹지를 지키는 일도 결국은 도시의 물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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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일도 도시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이번 답사에서 가장 자주 들었던 문장이 있습니다. "Trail is infrastructure." "트레일은 레크리에이션 시설이 아니라 도시 인프라입니다."
우리에게 트레일은 산책이나 러닝, 자전거를 즐기는 길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하지만 오스틴에서 트레일은 조금 다른 의미였습니다. 사람의 이동을 연결하고, 생태계를 이어주며, 빗물의 흐름까지 함께 관리하는 도시 기반시설이었습니다.
실제로 답사 중에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던 급커브 구간을 개선한 사례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길을 넓히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석재 옹벽을 설치하고, 토양과 수분 환경에 적합한 자생식물을 심고, 빗물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침투 공간을 함께 조성했습니다.
안전성과 경관, 생태성, 물순환을 하나의 공간 안에서 함께 해결하려 한 것입니다. 더욱 인상 깊었던 점은 이러한 사업이 The Trail Conservancy라는 시민단체와 오스틴시의 협력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시민들의 후원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행정과 시민사회가 함께 공원을 개선하고 유지관리하는 모습은 서울그린트러스트가 오랫동안 이야기해 온 공원 거버넌스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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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움직임에서 시작된 설계
또 하나 흥미로웠던 사례는 Johnson Creek Trailhead였습니다.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설계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도면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관찰하는 일이었습니다. 수 주 동안 타임랩스 카메라를 설치해 시민들이 실제로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기록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디를 걷는지, 어디에 오래 머무는지,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 계획되지 않은 동선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를 살펴본 것입니다.
결과는 예상과 조금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설계자가 의도한 길보다 훨씬 자유롭게 공간을 이용하고 있었고, 프로젝트팀은 이를 '잘못된 이용'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민들의 움직임을 존중하며 공간을 다시 설계했습니다. 공간을 사람에게 맞춘 것입니다.
이 사례는 공원이 설계자의 작품이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완성해가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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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인가든, 도시를 지키는 녹색 인프라
오스틴 도심 곳곳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빗물정원(Rain Garden)과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을 적용한 다양한 녹색 인프 형태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고속도로 아래 공간은 많은 비가 내릴 때마다 도로에서 흘러온 빗물과 토사가 한꺼번에 유입되는 곳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침식과 배수 문제가 반복되던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④번 ⓒ thetrailconservancy.org(고가도로에서 모이는 빗물들이 도로 아래 빗물저장소로 모이고 빗물정원 관수에 이용)
빗물이 잠시 머무는 침투시설을 만들고, 계단형 저류 공간을 조성하며, 자생식물을 심어 물을 천천히 흡수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자연형 배수 구조를 적용해 빗물이 흙을 거쳐 스며들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최근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을 때도 이러한 시설들이 기대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곳에서 빗물정원은 조경시설이 아니라, 도시를 지키는 녹색 인프라였습니다. 비를 저장하고, 침수를 줄이며, 토양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회복하는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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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된 하나의 물 순환
 | 답사를 마무리하며 가이드가 들려준 한마디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우리는 유역의 가장 마지막 지점에 있습니다." 공원 관리자는 상류에서 일어난 모든 영향을 함께 감당합니다.
그래서 공원 하나만 잘 관리한다고 도시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상류의 개발, 빗물의 흐름, 하천, 녹지, 시민의 이용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시스템처럼 연결되어야 합니다.
오스틴은 이를 'One Network'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트레일과 하천, 공원과 녹지,레인가든과 빗물관리 시설,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까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룰 때 도시의 물순환도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레이디 버드 호수 주변에서 만난 공간들은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도시가 오랜 시간 동안 자연의 순환을 회복하기 위해 고민해 온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오스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
지구 반대편의 또 다른 도시, 호주 멜버른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지며 도시의 물순환을 회복하는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호주 멜버른 | 도시 전체를 하나의 물순환 시스템으로 보다
오스틴이 공원과 트레일을 중심으로 도시의 물순환을 회복하고 있었다면, 호주 멜버른은 조금 더 큰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멜버른은 오랫동안 극심한 가뭄과 물 부족을 겪으며 하나의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비를 어떻게 도시 안에 머물게 할 것인가?"
도시에 내리는 비를 가능한 한 빨리 배수하는 것이 아니라, 저장하고, 정화하고, 다시 사용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 이것이 멜버른이 수십 년 동안 고민해 온 도시 물관리의 방향이었습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도 올해 초 산림청 도시숲경관과의 제안으로 호주 멜버른을 찾아 도시숲 정책과 공원, 시민단체, 연구기관을 둘러보는 현장 답사에 참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무처장님이 특히 인상 깊게 소개해주셨던 곳이 바로 피츠로이 가든(Fitzroy Gardens)이었습니다.
"언젠가는 꼭 소개해보고 싶은 사례"라며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이번 글을 쓰면서 다시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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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츠로이 가든즈(Fitzroy Gardens)
 ▲ 이미지 출처: ⓒCity of Melbourne | 멜버른 도심 동쪽에 자리한 피츠로이 가든은 1848년 공공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170년 가까운 시간을 품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공원입니다. 커다란 가로수와 잔디광장,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 덕분에 시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간이지만, 이 공원의 진짜 이야기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습니다. 바로 빗물 활용 시스템(Stormwater Harvesting System)입니다. 피츠로이 가든은 넓은 공원을 유지하기 위해 연간 약 1억 1,700만 리터의 물이 필요한 곳이라고 해요. 하지만 반복되는 가뭄과 물 사용 제한, 그리고 기후변화는 기존처럼 식수를 이용해 공원을 관리하는 방식을 점점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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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시는 새로운 물을 찾기보다, 이미 도시에 내리는 비를 다시 이용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공원 주변 약 67헥타르 규모의 유역에서 빗물을 모으고, 여러 단계의 정화 과정을 거쳐 다시 공원의 관수용수로 사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입니다. 비가 오면 도로와 주변 지역의 빗물이 지하 배수망을 따라 모입니다.
먼저 낙엽이나 쓰레기처럼 큰 오염물질을 걸러내고, 침전조에서 모래와 기름 등을 제거합니다. 이후 약 400만 리터 규모의 저장시설에 물을 모은 뒤, 식물이 자라는 생물여과층(Biofiltration)을 통과시키며 질소와 인 같은 미세 오염물질을 자연스럽게 제거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외선(UV) 살균 과정을 거친 물은 다시 공원의 관수용수로 사용됩니다. 비는 한 번 쓰이고 끝나는 자원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계속 순환하는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스템이 더욱 인상적인 이유는 단순히 공원 하나를 관리하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피츠로이 가든의 빗물 활용 시스템은 매년 약 3천만 리터의 식수를 절약하고, 공원 관수에 사용되는 식수의 약 59%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빗물과 함께 흘러들어오는 질소와 인, 퇴적물, 중금속 같은 오염물질이 그대로 야라강(Yarra River)으로 흘러가는 것을 줄여 하천의 수질 개선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도시가 비를 저장하면 공원만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강도 함께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기후위기로 폭염과 가뭄이 반복되는 시대에 이러한 시스템은 공원의 생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도 합니다. 결국 이 시설은 '공원 관리 시설'이라기보다 '도시의 물순환 인프라'에 가깝습니다. 공원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물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해 만든 시스템인 셈입니다.
좋은 공원은 아름다운 공간을 넘어, 도시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멜버른의 철학이 느껴졌습니다.


▲ 상단부터 이미지 출처: ①~② Xypex Australia, ③ City of Melbou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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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린스 파크(Princes Park)
멜버른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 사진출처 : ①,② Participate Melbourne / ③ Out Doors Inc.
도시 곳곳에서 빗물을 저장하고 활용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계획해왔는데, 그중 하나가 프린스파크(Princes Park)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원 인근 무니폰즈 크리크(Moonee Ponds Creek) 유역의 빗물을 모아 정화한 뒤, 대형 지하 저장시설에 보관하고 공원 관리에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 이미지출처 : ⓒ Participate Melbourne
계획대로라면 매년 수천만 리터의 빗물을 활용해 공원에서 사용하는 식수 대부분을 대체하고, 동시에 하천으로 흘러가는 오염물질도 줄일 수 있는 대규모 물순환 시스템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사업은 여러 여건으로 인해 최종 추진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이 보여준 방향은 분명했습니다. "비를 허투루 버리지 않는 도시."
멜버른은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물순환 시스템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공원은 그 시스템을 이루는 중요한 연결점이었습니다. 피츠로이 가든의 시스템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서울에서도 가능할까?"였습니다.
물론 규모만 놓고 보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400만 리터 규모의 저장시설과 도시 단위의 물순환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방향이었습니다. 비를 가능한 한 빨리 흘려보내는 도시에서, 비를 머물게 하고, 스며들게 하며, 다시 사용하는 도시로.
그 변화는 거대한 시설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정원 하나에서도 시작될 수 있습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가 동대문구와 서울숲, 매헌시민의숲에서 만들어 온 여러 정원들도 같은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의 도시는 비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답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서울 | 비를 머물게 하는 도시를 만들어가다
멀리 미국과 호주의 사례를 살펴봤지만, 사실 서울에서도 조금씩 같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빗물을 저장하고, 흙으로 스며들게 하고, 계절마다 습지를 만들고, 물길을 회복하며, 생물들이 살아갈 환경을 만드는 정원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여러 공원에서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원을 만들어왔습니다. 도시는 비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비를 가능한 한 빨리 흘려보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대신, 도시 안에서 천천히 순환하는 자원으로 생각한다면 정원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누군가는 빗물을 저장하고, 누군가는 땅으로 스며들게 하며, 또 다른 곳에서는 계절마다 습지를 만들고 물길을 회복합니다.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물순환을 회복하는 것. 서울 곳곳에 조성된 다섯 개의 정원을 따라, 물이 도시를 어떻게 조금씩 바꾸고 있는지 함께 걸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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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안근린공원 느린정원

동대문구 장안근린공원에 조성된 느린정원은 이름처럼 자연의 시간을 닮은 공간입니다. 비가 오면 빗물이 빠르게 흘러가 버리는 대신 잠시 머물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도록 만든 정원입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빗물저금통입니다. 건물 지붕으로 떨어진 빗물을 저장했다가 정원을 가꾸는 물로 다시 사용하는 작은 빗물 활용 시스템입니다. 도시에서는 비가 오면 가능한 한 빨리 배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느린정원은 반대로 질문합니다. "굳이 이 물을 버려야 할까?"
빗물저금통은 거대한 시설은 아닙니다. 하지만 작은 시설 안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비는 버려야 하는 물이 아니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생각입니다. 정원을 걷는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빗물이 어디에서 모이고, 어떻게 다시 사용되는지를 만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시설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시의 물순환을 처음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느린정원은 정원을 조성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이곳에서 생태탐사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며 시민들이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정원의 모습과 물의 흐름을 직접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비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가 머무는 공간을 직접 걸어보는 일이니까요.
📝 2026 여름 - 느린정원 장마일기 기록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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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평근린공원 빗물정원
같은 동대문구에 조성된 장평근린공원의 빗물정원은 이름 그대로 빗물이 머물고 스며드는 과정을 담은 공간입니다. 비가 내리면 정원은 잠시 물을 품습니다. 흙은 빗물을 천천히 흡수하고, 저장된 수분은 식물을 키우며 다시 자연으로 순환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집중호우 시 빗물이 한꺼번에 배수되는 것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식물과 토양이 물을 자연스럽게 걸러주면서 도시의 물순환을 회복하는 역할도 합니다. 하지만 이 정원의 진짜 매력은 비가 그친 뒤에 나타납니다.
촉촉한 흙에서는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곤충들이 찾아오고, 곤충을 따라 새들이 머뭅니다. 물이 머무는 시간이 곧 생명이 머무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이 공간에서도 시민들과 함께 생태탐사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참여자들은 계절마다 달라지는 식물과 곤충을 관찰하고, 비가 내린 뒤 정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직접 경험합니다. 정원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고 함께 돌보는 일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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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시민의 숲 록록정원
매헌시민의숲에 조성된 록록정원(Little Wet Garden)은 '비 온 뒤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입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록시땅 코리아, 서울시와 함께 기후변화와 도시화로 생태적 가치가 감소하고 있는 매헌시민의숲에 약 500㎡ 규모의 생태정원을 조성했습니다.
대표적인 공간이 낙우송 습원과 계절습원입니다.
낙우송 습원은 계절에 따라 수분을 머금으며 다양한 생물이 살아갈 환경을 만들고, 계절습원은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 잠시 물을 품었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물이 고여 있는 공간을 보면 불편함부터 떠올립니다.
하지만 자연에게 물은 생명의 시작입니다. 비가 내린 뒤의 록록정원은 오히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습지를 따라 식물이 자라고, 곤충과 새들이 찾아오며, 정원은 비를 통해 더욱 풍성한 생태계를 만들어갑니다.
록록정원은 '물을 없애는 정원'이 아니라 물을 품는 정원입니다. 그리고 그 물은 다양한 생명이 머무를 수 있는 터전이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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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숲 생생정원
서울숲공원의 생생(生生)정원은 물이 단순히 흐르는 공간을 넘어, 다양한 생명이 서로 연결되는 생태계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원입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신세계라이브쇼핑과 함께 서울숲공원의 생물다양성을 높이고, 도시 생태계의 연결성을 회복하기 위해 약 400㎡ 규모의 생태정원을 조성했습니다. 정원은 연못정원, 이끼정원, 숲정원, 벌의초원 네 가지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서로 다른 풍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생태계로 이어져 있습니다. 특히 눈여겨볼 곳은 연못정원이에요. 기존 배수로와 연못을 적극 활용해 물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수생식물과 다양한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도시에서는 배수로가 '물을 빨리 흘려보내는 시설'이라면, 생생정원에서는 '생명이 머무는 공간'으로 새롭게 해석한 것입니다. 물을 중심으로 이끼정원과 숲정원이 이어지고, 다시 벌의초원으로 연결됩니다.
그 결과 곤충과 새, 다양한 수분매개자가 정원 곳곳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생태계가 이어집니다. 서울숲이라는 큰 도시숲 안에서 생생정원은 하나의 작은 섬이 아니라, 주변 숲과 초지, 물길을 이어주는 생태 디딤돌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도시에서 물은 식물을 키우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생물을 연결하고, 생태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가 됩니다. 생생정원은 바로 그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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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숲 느린 산책의 정원
▲ ②,③ 비 온 뒤 정원 모습(2026. 7. 8.)
서울숲공원의 느린 산책의 정원은 조금 특별한 질문에서 다시 출발했습니다. "사람을 위한 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이 머무는 숲이 될 수 있을까?" 2020년 신한투자증권의 후원으로 처음 조성된 이 정원은 올해 새로운 모습으로 리뉴얼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 정원이 가진 자연의 흐름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물'이 있었습니다. 정원 입구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개구리나 새, 곤충 같은 작은 생물들이 물에 다가가기에는 높은 돌담이 하나의 장벽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번 리뉴얼에서는 이 돌담을 걷어내고, 흙과 물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공간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물은 사람만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다양한 생물들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서식환경이 되었습니다.
정원 곳곳에는 맹꽁이 연못, 수생연못, 블루가든, 새들의 작은 숲도 새롭게 조성되었습니다. 각각의 공간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길을 따라 연결되며 다양한 생물이 머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사람의 이용 경험이었습니다.
기존 산책로는 단차가 많아 자연스러운 풍경을 만들었지만, 휠체어나 유아차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리뉴얼에서는 누구나 편안하게 정원을 걸을 수 있도록 동선을 함께 개선했습니다. 사람을 위한 길과 생물을 위한 길.
두 가지를 함께 고민한 것입니다. 그 결과 느린 산책의 정원은 단순히 예쁜 정원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회복하고 사람과 생물이 함께 머무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물을 되살리는 일은 결국 생태계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고, 모두가 자연을 더 가까이 경험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비와 함께 살아가는 도시
물을 다루는 방식은 달라도, 지향하는 방향은 같습니다. 빗물을 저장하고, 빗물이 스며들도록 도우며, 계절습지를 품고 물과 생태계를 연결하고, 물길을 회복해 사람과 생물이 함께 이용하는 환경을 만들어가죠.
정원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이 향하는 방향은 하나입니다.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물의 순환을 되찾는 것. 그리고 그 물의 흐름을 따라 다양한 생명이 살아가고, 시민들이 자연을 이해하며 함께 돌볼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입니다.
장마철이 되면 우리는 비를 피해 다니는 데 익숙합니다. 침수를 걱정하고, 우산을 챙기고, 젖지 않을 길을 찾죠.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비는 도시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소중한 자원이기도 합니다. 빗물이 천천히 스며든 흙에서는 식물이 자라고, 그곳에 곤충과 새가 찾아옵니다. 그렇게 물은 도시 안에서 생명을 이어주는 순환의 시작이 됩니다. 이번 글에서 소개한 오스틴과 멜버른의 사례, 그리고 서울 곳곳의 정원들은 모두 같은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비를 어떻게 더 빨리 흘려보낼까?'가 아니라, '비를 어떻게 도시 안에 조금 더 오래 머물게 할 수 있을까?'
서울그린트러스트가 만들어 온 정원들도 같은 방향을 향합니다. 빗물을 저장하고, 땅으로 스며들게 하고, 습지를 품고, 물길을 회복하며 사람과 생명이 함께 머무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일.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도시의 물순환을 조금씩 되살려 갑니다.
장마철, 비가 내리는 날이라면 가까운 공원을 천천히 걸어보세요. 빗물이 어디로 흐르고, 어디에 머무는지, 그 주변에는 어떤 식물과 생명이 살아가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질지 모릅니다.
📌 함께 읽어보면 좋을 정보들 |
미국 환경보호청(US EPA) - Soak Up the Rain : Rain Gardens 미국 환경보호청(US EPA) - Types of the Infrastructure
멜버른시(CITY OF MELBOURNE) - Fitzroy Gardens Stormwater Harvesting System PARTICIPATE MELBOURNE - Princes Park Stormwater Harvesting Project [공주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홍정선, 김이형, - 식생이 조성된 LID 시설의 효율 평가 [경향신문] 광화문에 빗물 흡수용 ‘레인가든’ 조성, 정유진, 2012-08-20 [서울신문] 도심 빗물관리, 강우 유출·수질 오염 저감 효과, 박승기, 2019-05-30 [WIRED] If You Don’t Already Live in a Sponge City, You Will Soon, MATT SIMON, 2022-10-17 [The Guardian] Weatherwatch: How planting rain Gardens can reduce flooding, DAVID HAMBLING, 2025-01-09 [연합뉴스] 도심 열섬현상, 빗물로 완화…서울시, 관리시설 10개 확충, 황재하,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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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서울그린트러스트 2026년 7월 뉴스레터 ‘Shape of Water 中 도시는 왜 비를 저장하기 시작했을까?’에 수록되는 내용입니다. 매월 마지막 날, 서울그린트러스트의 활동소식과 함께 국내·외 초록 이야기에 대한 뉴스레터를 발행합니다.
💧도시 물 순환의 위기
긴 장마가 시작되는 계절입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우리는 가장 먼저 우산을 챙기고, 침수 뉴스를 확인하고, 출근길 교통 상황을 걱정합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지는 집중호우가 반복되면서, 비는 어느새 '피해야 하는 것', '가능한 한 빨리 흘려보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하죠.
하지만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요?
최근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세계 여러 도시에서는 '레인가든(Rain Garden)', 우리말로 빗물정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빗물을 배수하는 대신 잠시 머물게 하고, 천천히 땅으로 스며들게 하며,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기능을 하는 녹색 공간입니다.
사실 자연에서 빗물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숲에서는 나뭇잎을 타고 떨어진 빗물이 흙으로 스며들고, 식물의 뿌리를 적신 뒤 계곡과 하천으로 이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토양은 물을 저장하고, 식물은 수분을 흡수하며, 일부는 지하수로 스며듭니다.
빗물은 생명을 키우고 다시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 google geminai 4.0 로 생산한 이미지
하지만 도시에서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지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인 지면은 빗물이 스며들 틈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비가 내리면 대부분의 물은 배수시설을 통해 빠르게 하천으로 흘러갑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물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침수 위험은 커지고, 빗물은 도로 위의 오염물질과 함께 하천으로 유입되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폭우가 지나간 뒤입니다. 많은 비가 내렸는데도 도시는 다시 물 부족을 걱정합니다.
땅속에 저장되지 못한 물은 순식간에 도시를 떠나고, 우리는 또다시 폭염과 가뭄을 마주하게 됩니다.
기후위기로 인해 폭우와 가뭄이 반복되는 지금, 세계 여러 도시는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비를 어떻게 도시 안에 머물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해답은 의외로 거대한 댐이나 토목시설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공원과 정원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빗물을 품는 정원, 레인가든(Rain Garden)
정원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꽃과 나무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여러 도시가 주목하는 정원은 조금 다른 역할을 합니다. 바로 도시의 물순환을 회복하는 정원입니다.
비가 내리면 빗물을 잠시 모아두고, 천천히 흙으로 스며들게 하며, 식물이 자연스럽게 이용하도록 돕는 공간.
때로는 빗물을 저장하고, 때로는 계절마다 습지를 만들고, 때로는 개울과 연못을 연결해 다양한 생물이 살아갈 환경을 만드는 공간입니다.
이러한 정원들은 레인가든(Rain Garden), 빗물정원, 습지정원, 저류정원, 또는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도 자연의 물순환을 되살리는 것. 이러한 공간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합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빗물을 잠시 머물게 해 침수 위험을 줄이고, 흙으로 스며든 물은 식물의 생장을 돕습니다.
토양과 식생은 빗물을 자연스럽게 걸러 하천으로 흘러가는 수질을 개선하고, 증발산 작용은 여름철 도시의 열을 식히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좌측부터) ⓒTanner Springs Park (태너 스프링스 공원, 미국 포틀랜드) / ⓒConfluence Park (컨플루언스 공원, 미국 샌안토니오)
무엇보다 물은 생명을 불러옵니다. 물이 있는 곳에는 곤충이 찾아오고, 곤충을 따라 새가 머뭅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습지와 식생은 다양한 생물의 서식처가 되고,
시민들에게는 자연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줍니다.
그래서 레인가든은 단순히 비를 관리하는 시설이 아닙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생물다양성을 회복하며, 사람과 자연을 다시 연결하는 도시의 녹색 인프라(Green Infrastructure)입니다.
특히 이러한 레인가든의 역할은 최근 글로벌 ESG 및 생물다양성 공시 기준인 TNFD(자연관련 재무정보 공시)가 강조하는 생태계 서비스의 가치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TNFD 관점에서 도시 환경은 안정적인 수자원 공급과 토양의 정화 능력이라는 생태계 서비스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기존의 콘크리트 도시화는 수계 교란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레인가은은 빗물을 저장하고 정화해 지하수와 하천으로 되돌려줌으로써 수자원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자연이 주는 혜택에 대한 건강한 의존성을 회복하는 실질적인 평가 지표이자 해법이 되어줍니다.
이러한 흐름은 이미 세계 여러 도시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되고 있습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 활동가들도 미국 오스틴과 호주 멜버른에서 도시의 물순환 시스템을 직접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두 도시는 서로 다른 환경과 규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의 공통된 철학을 품고 있었습니다. 비를 버리는 도시가 아니라, 비와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만드는 것. 그 철학은 생각보다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울 곳곳에서 서울그린트러스트가 만들어 온 정원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 세계는 비를 어떻게 품고 있을까?
미국 오스틴 | 공원을 도시의 물순환 인프라로 만들다
"공원은 도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은 이 질문에 오래전부터 답을 찾아온 도시입니다. 오스틴 도심을 가로지르는 Lady Bird 호수 주변에는 공원과 트레일, 하천, 빗물정원(Rain Garden), 녹지가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민들은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며 이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용하지만, 그 아래에는 도시의 물순환을 회복하기 위한 치밀한 설계가 숨어 있습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 활동가들은 현지에서 진행된 〈Downtown Bike Tour of Green Stormwater Infrastructure Around Lady Bird Lake〉 프로그램에 참여해 이러한 공간들을 직접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달리며 만난 것은 단순히 잘 조성된 공원이 아니었습니다. 도시가 빗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갈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에 대한 하나의 철학이었습니다.
📍Barton Springs & Johnson Creek Trailhead
답사에서 가장 먼저 소개된 곳은 화려한 공원이 아니었습니다. 오스틴 시민들의 중요한 수원인 바튼 스프링스(Barton Springs)였습니다. 오스틴시는 이곳의 수질과 지하수를 보호하기 위해 'Save Our Springs Ordinance'라는 정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정책은 단순한 개발 규제가 아닙니다. 도시의 물순환을 유지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에 가깝습니다.
이를 위해 오스틴시는 개발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불투수면 최소화
저밀도 개발 유도
공원과 오픈스페이스 확보
자연지형 보전
주요 토지의 공공 매입 및 보호
결국 핵심은 하나였습니다. 비가 내렸을 때, 물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공간을 도시 안에 남겨두는 것.
공원을 만드는 일도, 녹지를 지키는 일도 결국은 도시의 물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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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일도 도시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이번 답사에서 가장 자주 들었던 문장이 있습니다. "Trail is infrastructure." "트레일은 레크리에이션 시설이 아니라 도시 인프라입니다."
우리에게 트레일은 산책이나 러닝, 자전거를 즐기는 길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하지만 오스틴에서 트레일은 조금 다른 의미였습니다. 사람의 이동을 연결하고, 생태계를 이어주며, 빗물의 흐름까지 함께 관리하는 도시 기반시설이었습니다.
실제로 답사 중에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던 급커브 구간을 개선한 사례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길을 넓히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석재 옹벽을 설치하고, 토양과 수분 환경에 적합한 자생식물을 심고, 빗물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침투 공간을 함께 조성했습니다.
안전성과 경관, 생태성, 물순환을 하나의 공간 안에서 함께 해결하려 한 것입니다. 더욱 인상 깊었던 점은 이러한 사업이 The Trail Conservancy라는 시민단체와 오스틴시의 협력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시민들의 후원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행정과 시민사회가 함께 공원을 개선하고 유지관리하는 모습은 서울그린트러스트가 오랫동안 이야기해 온 공원 거버넌스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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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움직임에서 시작된 설계
또 하나 흥미로웠던 사례는 Johnson Creek Trailhead였습니다. 새로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설계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도면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관찰하는 일이었습니다. 수 주 동안 타임랩스 카메라를 설치해 시민들이 실제로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기록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디를 걷는지, 어디에 오래 머무는지,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 계획되지 않은 동선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를 살펴본 것입니다.
결과는 예상과 조금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설계자가 의도한 길보다 훨씬 자유롭게 공간을 이용하고 있었고, 프로젝트팀은 이를 '잘못된 이용'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민들의 움직임을 존중하며 공간을 다시 설계했습니다. 공간을 사람에게 맞춘 것입니다.
이 사례는 공원이 설계자의 작품이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완성해가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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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인가든, 도시를 지키는 녹색 인프라
오스틴 도심 곳곳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빗물정원(Rain Garden)과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을 적용한 다양한 녹색 인프 형태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고속도로 아래 공간은 많은 비가 내릴 때마다 도로에서 흘러온 빗물과 토사가 한꺼번에 유입되는 곳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침식과 배수 문제가 반복되던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④번 ⓒ thetrailconservancy.org(고가도로에서 모이는 빗물들이 도로 아래 빗물저장소로 모이고 빗물정원 관수에 이용)
빗물이 잠시 머무는 침투시설을 만들고, 계단형 저류 공간을 조성하며, 자생식물을 심어 물을 천천히 흡수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자연형 배수 구조를 적용해 빗물이 흙을 거쳐 스며들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최근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을 때도 이러한 시설들이 기대한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곳에서 빗물정원은 조경시설이 아니라, 도시를 지키는 녹색 인프라였습니다. 비를 저장하고, 침수를 줄이며, 토양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회복하는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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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된 하나의 물 순환
"우리는 유역의 가장 마지막 지점에 있습니다." 공원 관리자는 상류에서 일어난 모든 영향을 함께 감당합니다.
그래서 공원 하나만 잘 관리한다고 도시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상류의 개발, 빗물의 흐름, 하천, 녹지, 시민의 이용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시스템처럼 연결되어야 합니다.
오스틴은 이를 'One Network'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트레일과 하천, 공원과 녹지,레인가든과 빗물관리 시설,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까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룰 때 도시의 물순환도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레이디 버드 호수 주변에서 만난 공간들은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도시가 오랜 시간 동안 자연의 순환을 회복하기 위해 고민해 온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오스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구 반대편의 또 다른 도시, 호주 멜버른 역시 같은 질문을 던지며 도시의 물순환을 회복하는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호주 멜버른 | 도시 전체를 하나의 물순환 시스템으로 보다
오스틴이 공원과 트레일을 중심으로 도시의 물순환을 회복하고 있었다면, 호주 멜버른은 조금 더 큰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멜버른은 오랫동안 극심한 가뭄과 물 부족을 겪으며 하나의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비를 어떻게 도시 안에 머물게 할 것인가?"
도시에 내리는 비를 가능한 한 빨리 배수하는 것이 아니라, 저장하고, 정화하고, 다시 사용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 이것이 멜버른이 수십 년 동안 고민해 온 도시 물관리의 방향이었습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도 올해 초 산림청 도시숲경관과의 제안으로 호주 멜버른을 찾아 도시숲 정책과 공원, 시민단체, 연구기관을 둘러보는 현장 답사에 참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무처장님이 특히 인상 깊게 소개해주셨던 곳이 바로 피츠로이 가든(Fitzroy Gardens)이었습니다.
"언젠가는 꼭 소개해보고 싶은 사례"라며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이번 글을 쓰면서 다시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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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츠로이 가든즈(Fitzroy Gardens)
▲ 이미지 출처: ⓒCity of Melbourne
멜버른 도심 동쪽에 자리한 피츠로이 가든은 1848년 공공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170년 가까운 시간을 품고 있는 역사적인 도시공원입니다.
커다란 가로수와 잔디광장,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 덕분에 시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간이지만, 이 공원의 진짜 이야기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습니다.
바로 빗물 활용 시스템(Stormwater Harvesting System)입니다. 피츠로이 가든은 넓은 공원을 유지하기 위해 연간 약 1억 1,700만 리터의 물이 필요한 곳이라고 해요. 하지만 반복되는 가뭄과 물 사용 제한, 그리고 기후변화는 기존처럼 식수를 이용해 공원을 관리하는 방식을 점점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멜버른시는 새로운 물을 찾기보다, 이미 도시에 내리는 비를 다시 이용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공원 주변 약 67헥타르 규모의 유역에서 빗물을 모으고, 여러 단계의 정화 과정을 거쳐 다시 공원의 관수용수로 사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입니다. 비가 오면 도로와 주변 지역의 빗물이 지하 배수망을 따라 모입니다.
먼저 낙엽이나 쓰레기처럼 큰 오염물질을 걸러내고, 침전조에서 모래와 기름 등을 제거합니다. 이후 약 400만 리터 규모의 저장시설에 물을 모은 뒤, 식물이 자라는 생물여과층(Biofiltration)을 통과시키며 질소와 인 같은 미세 오염물질을 자연스럽게 제거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외선(UV) 살균 과정을 거친 물은 다시 공원의 관수용수로 사용됩니다. 비는 한 번 쓰이고 끝나는 자원이 아니라, 도시 안에서 계속 순환하는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스템이 더욱 인상적인 이유는 단순히 공원 하나를 관리하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피츠로이 가든의 빗물 활용 시스템은 매년 약 3천만 리터의 식수를 절약하고, 공원 관수에 사용되는 식수의 약 59%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빗물과 함께 흘러들어오는 질소와 인, 퇴적물, 중금속 같은 오염물질이 그대로 야라강(Yarra River)으로 흘러가는 것을 줄여 하천의 수질 개선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도시가 비를 저장하면 공원만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강도 함께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기후위기로 폭염과 가뭄이 반복되는 시대에 이러한 시스템은 공원의 생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도 합니다. 결국 이 시설은 '공원 관리 시설'이라기보다 '도시의 물순환 인프라'에 가깝습니다. 공원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물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기 위해 만든 시스템인 셈입니다.
좋은 공원은 아름다운 공간을 넘어, 도시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멜버른의 철학이 느껴졌습니다.
▲ 상단부터 이미지 출처: ①~② Xypex Australia, ③ City of Melbou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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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린스 파크(Princes Park)
멜버른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 사진출처 : ①,② Participate Melbourne / ③ Out Doors Inc.
도시 곳곳에서 빗물을 저장하고 활용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계획해왔는데, 그중 하나가 프린스파크(Princes Park)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공원 인근 무니폰즈 크리크(Moonee Ponds Creek) 유역의 빗물을 모아 정화한 뒤, 대형 지하 저장시설에 보관하고 공원 관리에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 이미지출처 : ⓒ Participate Melbourne
계획대로라면 매년 수천만 리터의 빗물을 활용해 공원에서 사용하는 식수 대부분을 대체하고, 동시에 하천으로 흘러가는 오염물질도 줄일 수 있는 대규모 물순환 시스템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사업은 여러 여건으로 인해 최종 추진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이 보여준 방향은 분명했습니다. "비를 허투루 버리지 않는 도시."
멜버른은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물순환 시스템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공원은 그 시스템을 이루는 중요한 연결점이었습니다. 피츠로이 가든의 시스템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서울에서도 가능할까?"였습니다.
물론 규모만 놓고 보면 쉽지 않은 일입니다. 400만 리터 규모의 저장시설과 도시 단위의 물순환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방향이었습니다. 비를 가능한 한 빨리 흘려보내는 도시에서, 비를 머물게 하고, 스며들게 하며, 다시 사용하는 도시로.
그 변화는 거대한 시설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정원 하나에서도 시작될 수 있습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가 동대문구와 서울숲, 매헌시민의숲에서 만들어 온 여러 정원들도 같은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의 도시는 비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답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서울 | 비를 머물게 하는 도시를 만들어가다
멀리 미국과 호주의 사례를 살펴봤지만, 사실 서울에서도 조금씩 같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빗물을 저장하고, 흙으로 스며들게 하고, 계절마다 습지를 만들고, 물길을 회복하며, 생물들이 살아갈 환경을 만드는 정원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여러 공원에서 이러한 질문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원을 만들어왔습니다. 도시는 비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비를 가능한 한 빨리 흘려보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대신, 도시 안에서 천천히 순환하는 자원으로 생각한다면 정원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누군가는 빗물을 저장하고, 누군가는 땅으로 스며들게 하며, 또 다른 곳에서는 계절마다 습지를 만들고 물길을 회복합니다.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물순환을 회복하는 것. 서울 곳곳에 조성된 다섯 개의 정원을 따라, 물이 도시를 어떻게 조금씩 바꾸고 있는지 함께 걸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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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안근린공원 느린정원
동대문구 장안근린공원에 조성된 느린정원은 이름처럼 자연의 시간을 닮은 공간입니다. 비가 오면 빗물이 빠르게 흘러가 버리는 대신 잠시 머물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도록 만든 정원입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빗물저금통입니다. 건물 지붕으로 떨어진 빗물을 저장했다가 정원을 가꾸는 물로 다시 사용하는 작은 빗물 활용 시스템입니다. 도시에서는 비가 오면 가능한 한 빨리 배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느린정원은 반대로 질문합니다. "굳이 이 물을 버려야 할까?"
빗물저금통은 거대한 시설은 아닙니다. 하지만 작은 시설 안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비는 버려야 하는 물이 아니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라는 생각입니다. 정원을 걷는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빗물이 어디에서 모이고, 어떻게 다시 사용되는지를 만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시설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시의 물순환을 처음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느린정원은 정원을 조성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이곳에서 생태탐사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며 시민들이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정원의 모습과 물의 흐름을 직접 관찰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비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가 머무는 공간을 직접 걸어보는 일이니까요.
📝 2026 여름 - 느린정원 장마일기 기록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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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평근린공원 빗물정원
같은 동대문구에 조성된 장평근린공원의 빗물정원은 이름 그대로 빗물이 머물고 스며드는 과정을 담은 공간입니다. 비가 내리면 정원은 잠시 물을 품습니다. 흙은 빗물을 천천히 흡수하고, 저장된 수분은 식물을 키우며 다시 자연으로 순환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집중호우 시 빗물이 한꺼번에 배수되는 것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식물과 토양이 물을 자연스럽게 걸러주면서 도시의 물순환을 회복하는 역할도 합니다. 하지만 이 정원의 진짜 매력은 비가 그친 뒤에 나타납니다.
촉촉한 흙에서는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곤충들이 찾아오고, 곤충을 따라 새들이 머뭅니다. 물이 머무는 시간이 곧 생명이 머무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이 공간에서도 시민들과 함께 생태탐사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참여자들은 계절마다 달라지는 식물과 곤충을 관찰하고, 비가 내린 뒤 정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직접 경험합니다. 정원을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고 함께 돌보는 일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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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헌시민의 숲 록록정원
매헌시민의숲에 조성된 록록정원(Little Wet Garden)은 '비 온 뒤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입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록시땅 코리아, 서울시와 함께 기후변화와 도시화로 생태적 가치가 감소하고 있는 매헌시민의숲에 약 500㎡ 규모의 생태정원을 조성했습니다.
대표적인 공간이 낙우송 습원과 계절습원입니다.
낙우송 습원은 계절에 따라 수분을 머금으며 다양한 생물이 살아갈 환경을 만들고, 계절습원은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 잠시 물을 품었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물이 고여 있는 공간을 보면 불편함부터 떠올립니다.
하지만 자연에게 물은 생명의 시작입니다. 비가 내린 뒤의 록록정원은 오히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습지를 따라 식물이 자라고, 곤충과 새들이 찾아오며, 정원은 비를 통해 더욱 풍성한 생태계를 만들어갑니다.
록록정원은 '물을 없애는 정원'이 아니라 물을 품는 정원입니다. 그리고 그 물은 다양한 생명이 머무를 수 있는 터전이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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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숲 생생정원
서울숲공원의 생생(生生)정원은 물이 단순히 흐르는 공간을 넘어, 다양한 생명이 서로 연결되는 생태계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원입니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신세계라이브쇼핑과 함께 서울숲공원의 생물다양성을 높이고, 도시 생태계의 연결성을 회복하기 위해 약 400㎡ 규모의 생태정원을 조성했습니다. 정원은 연못정원, 이끼정원, 숲정원, 벌의초원 네 가지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서로 다른 풍경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생태계로 이어져 있습니다. 특히 눈여겨볼 곳은 연못정원이에요. 기존 배수로와 연못을 적극 활용해 물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수생식물과 다양한 생물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도시에서는 배수로가 '물을 빨리 흘려보내는 시설'이라면, 생생정원에서는 '생명이 머무는 공간'으로 새롭게 해석한 것입니다. 물을 중심으로 이끼정원과 숲정원이 이어지고, 다시 벌의초원으로 연결됩니다.
그 결과 곤충과 새, 다양한 수분매개자가 정원 곳곳을 오가며 자연스럽게 생태계가 이어집니다. 서울숲이라는 큰 도시숲 안에서 생생정원은 하나의 작은 섬이 아니라, 주변 숲과 초지, 물길을 이어주는 생태 디딤돌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도시에서 물은 식물을 키우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생물을 연결하고, 생태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가 됩니다. 생생정원은 바로 그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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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숲 느린 산책의 정원
서울숲공원의 느린 산책의 정원은 조금 특별한 질문에서 다시 출발했습니다. "사람을 위한 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명이 머무는 숲이 될 수 있을까?" 2020년 신한투자증권의 후원으로 처음 조성된 이 정원은 올해 새로운 모습으로 리뉴얼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 정원이 가진 자연의 흐름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물'이 있었습니다. 정원 입구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개구리나 새, 곤충 같은 작은 생물들이 물에 다가가기에는 높은 돌담이 하나의 장벽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번 리뉴얼에서는 이 돌담을 걷어내고, 흙과 물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공간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물은 사람만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다양한 생물들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서식환경이 되었습니다.
정원 곳곳에는 맹꽁이 연못, 수생연못, 블루가든, 새들의 작은 숲도 새롭게 조성되었습니다. 각각의 공간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길을 따라 연결되며 다양한 생물이 머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사람의 이용 경험이었습니다.
기존 산책로는 단차가 많아 자연스러운 풍경을 만들었지만, 휠체어나 유아차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리뉴얼에서는 누구나 편안하게 정원을 걸을 수 있도록 동선을 함께 개선했습니다. 사람을 위한 길과 생물을 위한 길.
두 가지를 함께 고민한 것입니다. 그 결과 느린 산책의 정원은 단순히 예쁜 정원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회복하고 사람과 생물이 함께 머무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물을 되살리는 일은 결국 생태계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고, 모두가 자연을 더 가까이 경험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비와 함께 살아가는 도시
물을 다루는 방식은 달라도, 지향하는 방향은 같습니다. 빗물을 저장하고, 빗물이 스며들도록 도우며, 계절습지를 품고 물과 생태계를 연결하고, 물길을 회복해 사람과 생물이 함께 이용하는 환경을 만들어가죠.
정원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이 향하는 방향은 하나입니다.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물의 순환을 되찾는 것. 그리고 그 물의 흐름을 따라 다양한 생명이 살아가고, 시민들이 자연을 이해하며 함께 돌볼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입니다.
장마철이 되면 우리는 비를 피해 다니는 데 익숙합니다. 침수를 걱정하고, 우산을 챙기고, 젖지 않을 길을 찾죠.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비는 도시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소중한 자원이기도 합니다. 빗물이 천천히 스며든 흙에서는 식물이 자라고, 그곳에 곤충과 새가 찾아옵니다. 그렇게 물은 도시 안에서 생명을 이어주는 순환의 시작이 됩니다. 이번 글에서 소개한 오스틴과 멜버른의 사례, 그리고 서울 곳곳의 정원들은 모두 같은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비를 어떻게 더 빨리 흘려보낼까?'가 아니라, '비를 어떻게 도시 안에 조금 더 오래 머물게 할 수 있을까?'
서울그린트러스트가 만들어 온 정원들도 같은 방향을 향합니다. 빗물을 저장하고, 땅으로 스며들게 하고, 습지를 품고, 물길을 회복하며 사람과 생명이 함께 머무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일.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도시의 물순환을 조금씩 되살려 갑니다.
장마철, 비가 내리는 날이라면 가까운 공원을 천천히 걸어보세요. 빗물이 어디로 흐르고, 어디에 머무는지, 그 주변에는 어떤 식물과 생명이 살아가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질지 모릅니다.
미국 환경보호청(US EPA) - Soak Up the Rain : Rain Gardens
미국 환경보호청(US EPA) - Types of the Infrastructure
멜버른시(CITY OF MELBOURNE) - Fitzroy Gardens Stormwater Harvesting System
PARTICIPATE MELBOURNE - Princes Park Stormwater Harvesting Project
[공주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홍정선, 김이형, - 식생이 조성된 LID 시설의 효율 평가
[경향신문] 광화문에 빗물 흡수용 ‘레인가든’ 조성, 정유진, 2012-08-20
[서울신문] 도심 빗물관리, 강우 유출·수질 오염 저감 효과, 박승기, 2019-05-30
[WIRED] If You Don’t Already Live in a Sponge City, You Will Soon, MATT SIMON, 2022-10-17
[The Guardian] Weatherwatch: How planting rain Gardens can reduce flooding, DAVID HAMBLING, 2025-01-09
[연합뉴스] 도심 열섬현상, 빗물로 완화…서울시, 관리시설 10개 확충, 황재하, 2026-03-19
※ 본 내용은 서울그린트러스트 2026년 7월 뉴스레터 ‘Shape of Water 中 도시는 왜 비를 저장하기 시작했을까?’에 수록되는 내용입니다. 매월 마지막 날, 서울그린트러스트의 활동소식과 함께 국내·외 초록 이야기에 대한 뉴스레터를 발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