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에 나쁜 OO는 없다

| 4월의 어느 날, 햇볕은 따스했지만, 한강의 바람이 온 공원에 불어오던 날. 푸른세상 정병현 나무 의사 선생님과 서울그린트러스트의 든든한 지원군, 공원의친구들 반장님과 활동가들이 함께 본격적인 한강숲 가꾸기 활동을 앞두고 이촌한강공원의 숲을 천천히 돌아보며 나무의 상태를 하나씩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강숲을 여러 번 걸어봤지만, 나무를 ‘이렇게까지’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골프존 숲, 부루벨 숲, 미래에셋생명 숲, 미래에셋증권 숲. 익숙한 이름의 숲이었는데도, 설명을 들으며 걷다 보니 전혀 다른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날 즈음, 제 안에 하나 남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나쁜 나무는 없다.’ |
🪻 우리가 만든 풍경은, 정말 자연스러운 걸까?
사실 저는 그동안 공원의 잔디나 잡초를 보면서 꽤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정리가 잘 되어 있다’, 혹은 ‘관리가 덜 됐네’ 정도로요. 그런데 이날 들은 이야기는 그 기준을 조금 흔들어놓았습니다.
한강공원 잔디 아래에서는 이미 클로버가 빠르게 퍼지며 자라고 있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잔디를 밀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제초를 반복하게 되는데, 그 이야기를 듣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걸 계속 없애고만 있을까…?
🍀 잔디 대신, 다른 선택을 한 곳도 있어요 실제로 해외에서는 잔디 대신 클로버를 선택한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마이크로클로버(microclover)’라고 불리는 품종은 키가 작고 촘촘하게 자라면서도, 잔디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유지해 공원이나 공공녹지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클로버는 질소를 고정하는 능력이 있어서 비료가 거의 필요 없으며 가뭄에도 강하며 잔디에 비해 깎아주는 횟수가 훨씬 적습니다.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물 사용량이 적으며, 잦은 제초나 비료 관리가 거의 필요 없어요. 그만큼 관리 비용과 노동도 줄어듭니다. 화이트 클로버는 여름철에 하얀 꽃을 피워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고, 벌과 같은 수분 매개 곤충에게도 먹이를 제공해서 도시 생물 다양성을 높입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런 선택이 오히려 공간의 이용을 더 자연스럽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더 자유롭게 앉고, 눕고, 머무르게 됩니다. ‘정돈된 잔디’가 아니라 머물고 싶은 바닥이 되는 셈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조금 낯선 생각이 스쳤습니다. 우리가 ‘잘 관리된 공원’이라고 믿어온 풍경이 사실은 끊임없이 자연을 거슬러 유지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동시에, 자연스럽게 두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 나무의 모습은 ‘OO의 결과’
가지가 갈라진 나무를 보며 그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나니 그 모습 역시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어릴 때 어떤 가지를 중심으로 키울지 정리해 주지 않으면 나무는 여러 개의 중심을 가진 채 자라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밀어내며 결국 찢어지거나 부러질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전정(가지치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순히 ‘자르는 일’이 아니라, 나무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 #전정: 과수나 수목의 수세(나무의 힘)와 결실(열매 맺음)을 조절하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가지의 일부를 잘라내거나 솎아주는 작업
나무의 가지와 줄기가 만나는 지점에는 자세히 보면 두 가지 구조가 보입니다. 하나는 가지와 줄기 사이에 능선처럼 솟아 있는 지피융기선, 다른 하나는 가지의 아랫부분을 감싸듯 도톰하게 부풀어 있는 지륭(가지밑살)입니다. 이 두 구조는 나무가 스스로 상처를 막고 회복하기 위한 경계이자 보호장치입니다.
올바른 전정은 이 지피융기선과 가지밑살을 기준으로 그 바깥쪽을 따라 가지를 잘라내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가지깃을 남긴 채로 자르면, 나무는 그 부분을 중심으로 상처를 감싸며 아물 수 있지만, 반대로 너무 바짝 붙여 자르거나, 가지깃까지 함께 잘라내면 상처가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고 내부에서 썩어버리게 됩니다. |
그밖에도 줄기에서 여러 갈래로 경쟁하듯 자라는 가지들, 즉 ‘공동주지’ 상태를 그대로 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적으로 약해지면서 찢어질 수 있기에, 초기에 중심이 되는 가지를 정리해주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
선생님의 나무 이야기를 들으며 전정은 나무를 ‘다듬는 일’이 아니라, 나무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방식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정에 뒤이어진 주제는, 삽목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정원과 공원을 관리하는 현장에서 삽목은 단순히 식물의 개체를 늘리는 방법을 넘어, 공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방식이기도 한데요.
같은 특성을 가진 개체를 이어갈 수 있어 경관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기존 식물에서 건강한 가지를 활용해 비용 부담 없이 식재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특정 환경에 잘 적응한 식물의 특성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어, 도시 환경에서 더욱 안정적인 생육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관리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삽목은 가지 하나를 잘라 흙에 꽂아 새로운 개체로 키워내는 방식인데, 수국처럼 삽목이 잘 되는 식물의 경우 한 나무에서 수백, 수천 개로도 늘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 # 삽목(꺾꽂이) : 식물의 줄기, 잎, 뿌리 일부를 잘라 흙이나 물에 꽂아 새로운 뿌리를 내리게 해 모체와 동일한 형질의 개체를 번식시키는 영양 번식법 |
숙지삽목(熟枝揷木) 
- 이른 봄(2~3월) 잎이 없는 1년생 묵은 가지를 이용해 뿌리를 내리는 무성 번식법. 눈이 트기 전 수분을 유지하며(20~25도, 습도 80~90% 유지) 그늘지거나 비닐로 밀폐된 환경에서 약 3개월간 관리하여 발근시킴
- 잎이 없는 가지만 심기 때문에, 천천히, 하지만 안정적으로 활착 가능
- 이촌한강공원 숲들에서 볼 수 있던 식물 : 말발도리, 공조팝, 조팝나무, 삼색조팝
ⓒ google gemini 생성 이미지 | 녹지삽목(綠枝揷木) - 당해 연도에 자란, 굳어지지 않은 어린 녹색 가지를 이용해 식물을 번식시키는 방법. 주로 6월 말~8월 중순 장마철 전후. 잎을 3~4장 남기고, 10cm내외로 잘라 습도를 80~90%로 유지. 잎을 남기는 이유는 광합성에 필요하기 때문
- 잎이 달린 어린 가이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게 뿌리를 내려서 자라남
- 이촌한강공원 숲들에서 볼 수 있던 식물 : 철쭉류
|
그만큼 식물은 생각보다 강인하고, 적절한 조건만 갖춰진다면 스스로 살아갈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삽목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건강한 토양과 환경이라는 점도 강조되었습니다.
이쯤에서 문득, 지금 눈앞에 있는 나무의 모습이 그저 자연의 결과가 아니라 사람의 선택이 쌓인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잘 자라는 것과, 잘 사는 것 사이

빠르게 자라는 나무가 항상 좋은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도 새로웠습니다.
성장이 빠른 나무일수록 조직이 무르고, 병해충에도 취약할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발병되어 미국으로 유입된 느릅나무 시듦병으로 인해 가로수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사례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은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지금 만드는 숲도 결국은 시간 위에 놓이게 될 텐데, 그 시간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 돌본다는 건,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일
이날의 시간은 단순한 강의라기보다 앞으로의 활동을 준비하는 자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올해 한강숲 숲가꾸기 활동에는 예년보다 더 많은 분의 손길이 더해질 예정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더 많은 나무를 만나고, 더 많은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어떻게 보이는지’보다 ‘이 나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될 것 같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가장 크게 바뀐 건 나무를 바라보는 속도였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천천히 보게 되고, 조금 더 오래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공간을 ‘관리한다’기보다 ‘돌본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한강숲은 이미 잘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는 결국 우리의 손에 달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올해의 숲가꾸기 활동은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무언가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
그 시작은 아마도 이 문장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일 것 같습니다.
세상에 나쁜 나무는 없습니다.
🌳🩺 한강숲에서 보내는 나무 의사의 편지 - 나무 의사 정병현 | ((주)푸른세상 대표
서울그린트러스트와 오랜 시간 도시숲을 함께 만들고 가꿔오면서 늘 느끼는 건, 결국 숲은 ‘돌봄’으로 유지된다는 점입니다. 나무는 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구조로 자라고 있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살피면서 그에 맞는 관리 방향을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그 공간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정리’라고 생각하는 일들, 예를 들어 잡초를 제거하고 잔디를 심는 방식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한강의 많은 공간들도 시간이 지나면 클로버가 더 우세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걸 계속 제거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하나의 식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있는 식물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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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서울그린트러스트 2026년 4월 뉴스레터 ‘한강숲에서 발견한 나무의 언어 中 세상에 나쁜 나무는 없다’에 수록되는 내용입니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서울그린트러스트의 활동소식과 함께 국내·외 초록 이야기에 대한 뉴스레터를 발행합니다.
🌳 세상에 나쁜 OO는 없다
4월의 어느 날, 햇볕은 따스했지만, 한강의 바람이 온 공원에 불어오던 날.
푸른세상 정병현 나무 의사 선생님과 서울그린트러스트의 든든한 지원군, 공원의친구들 반장님과 활동가들이 함께 본격적인 한강숲 가꾸기 활동을 앞두고 이촌한강공원의 숲을 천천히 돌아보며 나무의 상태를 하나씩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강숲을 여러 번 걸어봤지만, 나무를 ‘이렇게까지’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골프존 숲, 부루벨 숲, 미래에셋생명 숲, 미래에셋증권 숲. 익숙한 이름의 숲이었는데도, 설명을 들으며 걷다 보니 전혀 다른 풍경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날 즈음, 제 안에 하나 남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나쁜 나무는 없다.’
🪻 우리가 만든 풍경은, 정말 자연스러운 걸까?
사실 저는 그동안 공원의 잔디나 잡초를 보면서 꽤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정리가 잘 되어 있다’, 혹은 ‘관리가 덜 됐네’ 정도로요. 그런데 이날 들은 이야기는 그 기준을 조금 흔들어놓았습니다.
한강공원 잔디 아래에서는 이미 클로버가 빠르게 퍼지며 자라고 있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잔디를 밀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제초를 반복하게 되는데, 그 이야기를 듣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걸 계속 없애고만 있을까…?
🍀 잔디 대신, 다른 선택을 한 곳도 있어요
실제로 해외에서는 잔디 대신 클로버를 선택한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특히 ‘마이크로클로버(microclover)’라고 불리는 품종은 키가 작고 촘촘하게 자라면서도,
잔디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유지해 공원이나 공공녹지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클로버는 질소를 고정하는 능력이 있어서 비료가 거의 필요 없으며
가뭄에도 강하며 잔디에 비해 깎아주는 횟수가 훨씬 적습니다.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물 사용량이 적으며, 잦은 제초나 비료 관리가 거의 필요 없어요.
그만큼 관리 비용과 노동도 줄어듭니다. 화이트 클로버는 여름철에 하얀 꽃을 피워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고,
벌과 같은 수분 매개 곤충에게도 먹이를 제공해서 도시 생물 다양성을 높입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런 선택이 오히려 공간의 이용을 더 자연스럽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더 자유롭게 앉고, 눕고, 머무르게 됩니다. ‘정돈된 잔디’가 아니라 머물고 싶은 바닥이 되는 셈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조금 낯선 생각이 스쳤습니다.
우리가 ‘잘 관리된 공원’이라고 믿어온 풍경이 사실은 끊임없이 자연을 거슬러 유지되고 있는 건 아닐까.그리고 동시에, 자연스럽게 두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Portland, Oregon)
미국 오리건주에 위치한 포틀랜드는 지속 가능한 도시 조경의 선두주자로, 공공 공원과 가로수길에 잔디 대신 마이크로클로버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대표적인 도시
- 적용 방식: 기존 잔디와 클로버를 혼합(Mix)하여 파종하거나, 아예 클로버 위주의 'Eco-Lawn'을 조성
- 효과: 농약과 비료 사용을 줄이고, 꿀벌 등 화분 매개 곤충의 서식처를 제공하는 생태적 효과 거
ⓒ 출처: Portland State University - Sustainable Landscaping Resources & 포틀랜드 시 공원 관리국(Portland Parks & Recreation) 운영 보고서미네소타 대학교와 주 정부가 협력하여 공공 공원 및 주거지 잔디밭을 '꿀벌 친화적 잔디(Bee Lawns)'로 전환하는 대규모 캠페인 진행중.
ⓒ 출처: University of Minnesota Bee Lab - Bee Lawn Tool Kit
캐나다는 살충제 및 제초제 사용에 대한 규제가 매우 엄격하여, 공원 관리 시 화학 약품 없이 잡초를 이길 수 있는 클로버를 선호
ⓒ 출처: The Weather Network - Montreal drives for greener golf courses by banning most pesticides
❓ 나무의 모습은 ‘OO의 결과’
가지가 갈라진 나무를 보며 그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나니 그 모습 역시 우연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어릴 때 어떤 가지를 중심으로 키울지 정리해 주지 않으면 나무는 여러 개의 중심을 가진 채 자라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밀어내며 결국 찢어지거나 부러질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전정(가지치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순히 ‘자르는 일’이 아니라, 나무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전정: 과수나 수목의 수세(나무의 힘)와 결실(열매 맺음)을 조절하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가지의 일부를 잘라내거나 솎아주는 작업
나무의 가지와 줄기가 만나는 지점에는 자세히 보면 두 가지 구조가 보입니다. 하나는 가지와 줄기 사이에 능선처럼 솟아 있는 지피융기선, 다른 하나는 가지의 아랫부분을 감싸듯 도톰하게 부풀어 있는 지륭(가지밑살)입니다. 이 두 구조는 나무가 스스로 상처를 막고 회복하기 위한 경계이자 보호장치입니다.
올바른 전정은 이 지피융기선과 가지밑살을 기준으로 그 바깥쪽을 따라 가지를 잘라내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가지깃을 남긴 채로 자르면, 나무는 그 부분을 중심으로 상처를 감싸며 아물 수 있지만, 반대로 너무 바짝 붙여 자르거나, 가지깃까지 함께 잘라내면 상처가 제대로 회복되지 못하고 내부에서 썩어버리게 됩니다.
그밖에도 줄기에서 여러 갈래로 경쟁하듯 자라는 가지들, 즉 ‘공동주지’ 상태를 그대로 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적으로 약해지면서 찢어질 수 있기에, 초기에 중심이 되는 가지를 정리해주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
선생님의 나무 이야기를 들으며 전정은 나무를 ‘다듬는 일’이 아니라, 나무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방식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정에 뒤이어진 주제는, 삽목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정원과 공원을 관리하는 현장에서 삽목은 단순히 식물의 개체를 늘리는 방법을 넘어, 공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방식이기도 한데요.
같은 특성을 가진 개체를 이어갈 수 있어 경관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기존 식물에서 건강한 가지를 활용해 비용 부담 없이 식재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특정 환경에 잘 적응한 식물의 특성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어, 도시 환경에서 더욱 안정적인 생육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관리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삽목은 가지 하나를 잘라 흙에 꽂아 새로운 개체로 키워내는 방식인데, 수국처럼 삽목이 잘 되는 식물의 경우 한 나무에서 수백, 수천 개로도 늘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숙지삽목(熟枝揷木)
녹지삽목(綠枝揷木)
그만큼 식물은 생각보다 강인하고, 적절한 조건만 갖춰진다면 스스로 살아갈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삽목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건강한 토양과 환경이라는 점도 강조되었습니다.
이쯤에서 문득, 지금 눈앞에 있는 나무의 모습이 그저 자연의 결과가 아니라 사람의 선택이 쌓인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잘 자라는 것과, 잘 사는 것 사이
빠르게 자라는 나무가 항상 좋은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도 새로웠습니다.
성장이 빠른 나무일수록 조직이 무르고, 병해충에도 취약할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발병되어 미국으로 유입된 느릅나무 시듦병으로 인해 가로수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사례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은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지금 만드는 숲도 결국은 시간 위에 놓이게 될 텐데, 그 시간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 돌본다는 건,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일
이날의 시간은 단순한 강의라기보다 앞으로의 활동을 준비하는 자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올해 한강숲 숲가꾸기 활동에는 예년보다 더 많은 분의 손길이 더해질 예정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더 많은 나무를 만나고, 더 많은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어떻게 보이는지’보다 ‘이 나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될 것 같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가장 크게 바뀐 건 나무를 바라보는 속도였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천천히 보게 되고, 조금 더 오래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공간을 ‘관리한다’기보다 ‘돌본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한강숲은 이미 잘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는 결국 우리의 손에 달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올해의 숲가꾸기 활동은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무언가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
그 시작은 아마도 이 문장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일 것 같습니다.
세상에 나쁜 나무는 없습니다.
🌳🩺 한강숲에서 보내는 나무 의사의 편지 - 나무 의사 정병현 | ((주)푸른세상 대표
서울그린트러스트와 오랜 시간 도시숲을 함께 만들고 가꿔오면서 늘 느끼는 건, 결국 숲은 ‘돌봄’으로 유지된다는 점입니다.
나무는 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떤 구조로 자라고 있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살피면서
그에 맞는 관리 방향을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그 공간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정리’라고 생각하는 일들, 예를 들어 잡초를 제거하고 잔디를 심는 방식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한강의 많은 공간들도 시간이 지나면 클로버가 더 우세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걸 계속 제거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하나의 식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있는 식물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본 내용은 서울그린트러스트 2026년 4월 뉴스레터 ‘한강숲에서 발견한 나무의 언어 中 세상에 나쁜 나무는 없다’에 수록되는 내용입니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서울그린트러스트의 활동소식과 함께 국내·외 초록 이야기에 대한 뉴스레터를 발행합니다.